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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책 이야기

by 로드비취 2015. 9. 23. 21:06

본문

 

 

네 이웃을 것을 탐하지 말라

여기서 특별히 우리는 네 이웃의 것을 탐하고 욕망하는 것을 율법을 드러내 준다.

멀리 있는 그 누구가 아니라, 바로 곁의 내 이웃인 것이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사촌이 땅을 사니까배가 아픈 것이다.

삼성기업 회장이 나보다 많이 벌어서 시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동서가나보다 더 많이 벌기 때문에 시기가 나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보다 높아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내 동료가 갑자기 승진해서 경쟁심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을 보면 그렇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공을 한아이가 가지고 놀면, 갑자기 주변의 아이들이 달려들면서 그 공을 서로 잡으려 야단이다. 사실 그냥 구석에 박힌 공은 아이들에게 별 자극이 되지 못했다. 내 친구가 그 공을 가지고 놀고 있기에 그 공이 커 보이는 것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경쟁자의 등장은 욕망의 정당성과 욕망 대상의 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

우리 속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경쟁과 이웃의 것에 대한 욕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모방적 경쟁상대와 그 결과를 지칭하는 명사는 그리스어로 스캔들리젠(skandalizein)이다. 이것은 다리를 절다라는 의미의 동사에서 나왔다. 절름발이는 무엇을 닮았을까?

절름발이는 보이지도 않는 장애물을 그림자처럼 뒤따라가고 있는, 그러다가 그 장애물에 발을 헛디뎌서 비틀거리고 있는 사람과 닮아있다.

 

성경은 부딪히면 넘어지는 돌 곧 스캔들(Scandale)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죄의 기회, 죄의 유혹, 장애물이 이해되고 있다. 걸림돌이다.

이 말은 히브리어 어원처럼 스캔들로 부딪쳤다가 쉽게 피할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장애물이 아니라 거의 피할 수가 없는 기묘한 장애물이다. 이 스캔들 걸림돌이 우리를 물리칠수록 실은 우리를 더 끌어당긴다. 우리는 이전에 그 걸림돌에 상처를 많이 입었을수록 더 열정적으로 다시 그 장애물에 빠져들어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이것은 무서운 것이다. 예수님도 이를 경고하기 위해 과장된 어조를 사용하고 계신다.

 

(18:6~9)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1)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2)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1)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너희 손이 너를 넘어지게 하면 (실족하게하면) 손을 자르고, 네 눈이 너를 범죄케 (실족) 하거든 너희 눈을 빼버려라’(18:8~9)

이 동사 범죄라는 단어가 넘어지게 하다(스칸달리조)와 명사 넘어지게하는 것(스칸달론)이 매우 특징적으로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넘어지게 하는 일이 세상 끝 날까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을 직시하도록 촉구한다. 동시에 그 자신이 넘어지게 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 자는 화를 면할 길이 없다는 것도 밝히신다. 넘어지게 하는 필연성이 그 일을 도모하는 자의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반복적 경고는 넘어짐, 스캔들의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따라서 그러한 위험의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제자가 생명을 확보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를 강조해 준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기를 방해하는 베드로에게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사탄은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사탄은 도덕이나 금기를 무시하고 우리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 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해방된 기분을 맛본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 말에 속아 마음대로 하다가는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를 기다리는 함정을 알려주고 경고하기 보다는 우리를 그 함정에 빠뜨린다. 사탄은 유혹자 이다. 하와를 유혹한 이후 이 땅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해 왔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한자이다.

 

율법이 죄를 정하고, 사단은 그 율법을 넘어 우리에게 해방을 주는 듯 하지만, 결국 그 율법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전에 전혀 들어볼 수 없는 율법 외에 한 다른 의가 나타났다.

21 이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2:14-15)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사탄은 지금껏 인간을 자신의 공범으로 만들고, 또한 항상 자신에게 갚을 빚이 있는 채무자로 만든다. 하지만, 십자가는 그것을 무효화시키고 제하여 버리시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십자가는 인류 역사 이래 계속되어온 사탄의 노예상태로부터 십자가를 믿는 자들을 해방시키신다.

 

골로새서의 이 본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담대히 선언하신 요 12:31-11절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내가 땅에서 드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말씀하심이라.”

사탄과 그 모든 세력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완전 무력화 되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승리했다고 소리치던 그 때, 그리스도는 사탄과 그의 모든 권세를 부끄럽게 하신 것이다(제시 펜 루이스 - 십자가의 도 p.24).

 

십자가를 짊어진 그리스도의 승리의 행렬을 따라 권세와 권능도 모든 사람들 앞에 구경거리가 된다. 권세와 권능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메타포는 승리이다. 이것은 승리한 장군에게 수여하는 보상품이다.

한번 상상해 보자.

 

로마의 개선장군은 마차 위에 서서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도시로 입장한다. 그 뒤를 따른 행렬에는 쇠사슬에 묵인 적의 장군도 있다. 개선장군이 그리스도이고 그의 승리는 십자가이다. 정복자 뒤의 묶인 적군의 장군의 죄의 권세요 권능이다.

 

십자가는 세상적 의미의 승리와는 다른 방법을 취하신 것이다.

십자가 승리는 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완전한 포기의 결과였다. 이 포기는 정말 완전한 포기라서 그리스도에게 폭력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 행한 이 폭력이 예수님을 못박은 이 십자가가 실상 사단의 권세 죄의 권능 어둠을 못박은 현장이었다.

 

[고전 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런데 주님이 이 죄의 권능인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내신 것이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바울은 고전 2:8에서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오리게네스를 비롯한 수많은 교부들이 방금 인용한 바울서신 구절로부터 수세기 동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십자가에 속은 사탄이라는 이론이다.

여기에서 십자가를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함정으로 본다. 하나님의 책략은 사탄보다 뛰어나다. 예수님은 마치 사탄이라는 게걸스러운 고기를 잡기 위한 낚시꾼이 바늘에 단 미끼처럼 되셨다. 영광의 주님이 사단의 권세를 멸하고 우리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낮아지신 것이다.

12:23-24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썩어짐으로 죽는 것이지만, 더 많은 열매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영광을 얻을 때가 되고 있다. ? 썩어짐 죽어짐이 생명의 길 통로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지혜는 이것을 알지 못한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면 끝이 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끝은 예수님의 끝이 아니라 바로 사탄의 끝이었다. 세상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가 자기 꾀에 속아 걸려 넘어진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승리이며, 그를 믿는 자의 승리가 된다.

 

고전 2:6-9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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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르네 지라르 저, 김진식 역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문학과 지성사

2. 존 스토트 저, 황을호 역 <기독교의 기본진리>

3. 제시 펜 루이스 저, 채대광 역 <십자가의 도>

4. 양용의 저 <마태복음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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