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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장 27~35절

영혼의 양식

by 로드비취 2015. 9. 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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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27~35

예루살렘에서 결박된 바울

 

 

 

 

 

루머로 인한 피해

 

1. 바울이 예루살렘에 이를 때 형제들은 어떻게 하는가?

: 기꺼이 영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바울이 자기봉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방인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함.

 

2. 예루살렘 형제들이 바울에 대해 걱정하며 제안한 것은?

 

: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히 있는 자들이다.

저희가 바울이 이방에 있는 유대인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함을 들었다.

그러므로, 서원한 4사람을 데리고 가서 결례를 행하고 머리를 깎게 하여 오해를 풀라고 한다.

->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고,

바울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 일에 순종한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결례가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26)

-> 우리 삶에 분명히 다투어야 할 것이 있고, 지혜롭게 피해가야 할 일도 있다.

 

3. 그 이레가 찼을 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한 일은?

 

바울이 결례를 행하는 기간 각종 희생 제물의 비용을 치루고 그들의 희생제사에 참여고 있던 그 때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잡는다. 바울이 유대인 정적들과 오해를 풀기위해 결례를 행하러 갔다가 성전에서 체포되 것이다.

이 사람은 각 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였다.’

-> 바울이 범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예견된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바울의 태도를 본다.

 

-> 전문맥 사도행전 218절 이하에 보면, 일곱집사 중 하나인 빌립의 딸 넷이 처녀로 예언하는 자로 있었고,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유대로 부터와 바울에게 예언했다.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 매고 말한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사람들이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로마와 스페인도 보아야 하리라는 그의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결박되고 혹은 순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의 지시에 순응하고 있다.

-> 아브라함도 자기 씨로 하늘의 별처럼 번성케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연기처럼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코자 여행길을 떠났다.

 

4. 반대자들의 모함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고 모함한다.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전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간 줄로 생각한 것이다. 예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중에 있는 바울을 보았다고, 그 이방인이 분명 바울과 함께 성전 뜰까지 들어왔다고 억측한 것이다.

 

-> 이일은 바울인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가졌던 관계로 인해 일어났고. 바울은 그 관계를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예루살렘 성에까지 데려간 것을 성전에 들어갔다고 확대해석한 것이다. 바울에 대한 적개심을 유도하기 위한 부풀리기 언론 플레이.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의 입소문 루머에 동요되어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도 없이 다른 사람을 곤란에 빠뜨리는 일에 동참한 적은 없는가?

 

-> 예루살렘은 긴장이 고조되어 성전에는 시카리라고 하는 식칼?든 칼 든 자객들이 이방인과 손 잡았다고 의심받는 귀족들을 암살하고 있었다. 유대 민족주의가 상승세를 타면서 그 민족주의 배타성은 소위 충성스러운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일원과 교제하는 것을 용납지 못하게 만들었다.

 

 

-> 벨릭스 전 로마총독이었던 쿠마누스 치하에서, 한 로마 병사가 성전부근에서 자기 몸을 드러냈다가 그 뒤에 발생한 소요사태로 만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전한다. 또 다른 병사가 유대인의 율법책을 불태웠을 때 쿠마누스는 군중들의 요구에 의해 그 병사를 처형했다.

이방인에게 허용되었던 뜰과 여인들의 뜰을 가로막는 장벽은 1.3m가 조금 넘는 것으로 곳곳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곳을 넘어오는 외국인들은 누구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라

이 일은 유대인 관원들이 로마와 상의하지 않고, 심지어는 로마시민에게조차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금지조항 중에 하나였다.

 

 

5. 바울의 구원

 

온 성이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나가 문이 닫혔다.

이때,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려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갔다.

바울치기를 그친 무리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실상을 알 수 없었다.

그를 죽이려 매질하던 유대인의 손에서 벗어나 영문 안’ (안토니안 요새)으로 들어갔고, 백성의 무리는 그를 없이하자며 외치며 따라갔다.

 

-> 예수님이 걸어갔던 그 길을 걸어가는 사도바울. 성난 무리의 외침 속에 매질당하고 죽음의 순간까지 가야 했던 바울. ‘그를 없이하자는 외침 또한 눅23:18에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들이 외친 소리였다.

 

-> 836.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모습이다. 우리 삶이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도 신성한 특권이요 사명임을 알고 있는가?

바울은 반대자들에게 수도 없이 매를 맞고 여러번 죽을 뻔했으며, 유대인들로부터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후 11:23,24).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순간에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음을 인해 도리어 자랑스러워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당하고, 욕을 먹고, 쫓겨나고, 손해를 당해도 그것으로 참으로 기뻐할 수 있겠는가?

 

찬송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 날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 봅니다.

 

-> 이런 죽음의 위기의 순간, 바울을 구하고자 로마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23:26)를 급히 내려 보내시는 하나님. 그 분이 허락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람을 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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