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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신에게

영혼의 양식

by 로드비취 2015. 7. 21. 15:54

본문

 

 

 

 

사도행전 1716~23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전문맥>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베뢰아에서는 박해가 없었고, 순수히 복음을 받아드렸다. 베뢰아인은 신사적이었다. 헬라어 원 단어로 고결한, 고상한뜻을 지닌다.

베뢰아의 준비된 마음 밭에 즐겁게 복음의 씨를 뿌리던 바울은 데살로니가로부터 원정 나온 유대인의 방해로 베뢰아로부터도 떠났다. 베뢰아 교인들은 바울을 아테네까지 전송해 주었고, 바울은 아테네에서 디모데와 실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디모데와 실라를 기다리며 아테네 성을 거닐던 바울. 일부러 아테네에서 적극적인 선교를 하려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람을 기다리며 쉬어가는 자리였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을 전하게 된다.

 

<본문>

 

 

 

 

1. 바울이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함이 일었기 때문이다.

우상이 가득한 것에 대한 분노. 우리에겐 그런 의분이 있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화롭게도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

우리시대는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분노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도 믿지 않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때 기드온 성경을 가지고 지우개따먹기처럼 하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이 심히 아팠다. 그래서, 학교에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이 복음을 듣게 만들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SFC 동아리 위원장하며, 신입생 들어온 온 반에 들어가 동아리 홍보를 하며 복음을 전했다. 추수감사절에 학생들이 돈을 모아 감사의 편지를 선생님들께 드렸다. 생물시간에 진화론문제로 생물선생님과 학생들 앞에서 논쟁을 벌인 일도 있다.

우리는 우상에 대해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않고, 복음전도의 필요도 느끼지 않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신들을 놓아두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 것처럼 말이다.

 

2. 바울의 복음과 변론 한 자들과 그들의 반응은?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 저자거리 시장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다. 토론하고 논쟁했다는 말이다.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이방신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

회당이든 시장에서든 유대인이든 헬라 철학자든 가리지 않고 만나 복음전하는 열정. 우리는 스스로 복음에 대해 받을 자와 받지 않을 자를 가리고 있지 않는가?

 

당시 대부분의 헬라인들은 사후세계 개념을 믿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헬라인들은 불멸의 영혼이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순수한 하늘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정신적 쾌락주의학파라 불리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영혼의 불멸을 부인했다. 영혼도 물질이며 몸과 함께 죽는다고 믿었다. 이들의 삶의 목적은 쾌락이었고 이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뇌가 없는 상태를 쾌락으로 보았다. 현세적 삶 지금여기의 만족에 집중했던 것이다.

 

못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말라. 다만, 지금 가진 것이 한때 바라기만 했던 것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상기하라’- 에피쿠로스.

 

단순한 육체적 쾌락주의자가 아니라 아탁락시아즉 마음의 동요가 없는 평온한 상태의 정신적 쾌락을 추구했다.

 

스토아학파는 에피쿠로스 학파와는 대치되어 있었다. 스토아 학파는 사후에도 영혼이 계속 살아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육신의 부활 몸의 부활까지는 믿지 않았다.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로마 제정시대 정치가로 세네카가 있다. 네로(Nero) 황제의 스승으로, 그리고 황제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어 네로에게 자살을 명령받은 일로 그의 이름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육체가 그 의무를 다했을 때 고통 받는 영혼을 육체로부터 구해내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예정된 시간까지 기다린다면 자칫 영혼을 구해낼 힘조차 잃어버릴 수도 있다. 노년이 나의 이성을 빼앗고 그것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다만 수족의 조그만 움직임만 남는다면 누구라도 힘없이 무너져 금세 부서져 버릴 것 같은 그 낡은 건물에서 당장 뛰쳐나오지 않겠는가. "-세네카

 

당대의 지성의 상징 아테네. 철학과 논쟁의 가장 핵심에 있었던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과도 말빨로 밀리지 않을 정도로 지성과 영성이 준비된 바울이었다.

복음은 지성을 넘어서는 초지성적인 것이지, 몰지성적인 것은 아니다. 덮어놓고 믿는 무식한 신앙 이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가야 한다.

 

 

3. 예수와 부활을 전하는 바울이 붙들려 간곳은?

 

 

 

 

 

 

아레오바고였다. 당시 아레오바고는 강의를 듣고 평가해서 승인하는 기관이었다. 바울이 공식적인 설교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수세기 전에 아레오바고로 붙들려왔다.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청중을 격분시켰고, 나중에 독배를 마시며 죽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이지 알고자 하노라

이들은 가장 새로된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 시간을 쓰지 아니하였다.

 

4. 아레오바고에서 전한 바울의 설교는?

 

 

 

 

아테네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알지 못하는 신 바울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역병이 돌았을 때, 어떤 제단도 신들의 노여움을 풀지 못했다. 아덴 사람들은 결국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단을 쌓았는데, 즉시 역병이 가라앉았다. 이 제단들이 바울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바울은 이것을 설교의 근거로 사용했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는, 만인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을 소개함.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여 있음.

 

에피메니데스 우리가 그를 힘입어 기동하며 있느니라.’

아라투스 너희 시민 중에도 어떤 사람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에베소서 2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희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신의 소생이 되었으니신을 금, ,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심. 공의를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심.

 

4. 설교에 대한 반응?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기롱하기도 하고,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게다 하는 이들도 있음.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은 헬라인들이 보기에 미련한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그 사람들에게 생명의 부활은 황당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다.

하지만, 몇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고,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 다마리아라 하는 여자. 또 다른 사람들이 믿는 자 중에 있음. 디오누시오의 회심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아레오바고 의회는 이 대학 공동체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을 보아 아레오바고 관원인 디오누시오가 복음을 믿게 된 것으로 앞으로 아테네지역에 복음이 심겨지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결론>

 

바울은 성공한 설교자인가 실패한 설교자인가?

이 설교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둘로 갈라진다. 우선 바울의 설교를 실패한 설교로 보는 시각이 있다. 결신자 숫자가 미미했다는 데 있다. 설교 후에 바울은 불과 몇 명만을 결신자를 얻었을 뿐이다. 베드로는 한 번 설교해서 3천 명, 5천 명을 한꺼번에 믿게 만들었는데 바울은 고작 서너 명밖에 믿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바울의 설교를 성공한 설교요, 더 나아가서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어 현대인에게도 의미 있는 뛰어난 설교라고 본다. 바울의 설교는 결신자 숫자와 상관없이 내용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성공한 설교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아테네 시민들이었으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교를 한 것이다. 그들의 존중하며 문화적 종교적 눈높이에 맞게 복음을 증거한 것이다.

 

종교심은 많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아테네 사람처럼. 우리나라도 종교적 열심히 있고, 또 종교적 분위기는 있지만, 복음에 부딪히지 못하고 우상처럼 하나님을 섬기기나, 우상을 섬기는 이 세대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지혜와 열정으로 진정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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