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지 말라
마7:1-6
Mon, 23 Mar 09 Day Break Pray meeting
김광영 목사
▶ Opening
하시디즘의 이야기 한 토막
압트의 랍비의 제자인 랍비 나프탈리, 나중에 롭취츠의 랍비가 된 그가 동료학생이 그들의 선생이 그를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기를 요청했다. 반년동안 그의 친구는 매번의 노력이 랍비가 뭔가 말하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나프탈리에 대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동료제자가 나프탈리에게 말했다.
“당신이 보듯이 선생은 그의 입안에 황금비늘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를 나쁘게 한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는 결코 누구든 판단이 스쳐가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악하다고 계속적으로 악하다고 추측되는 사람을 판단하기를 잊어버렸는가? 이는 만일 누군가가 그들에게 나쁘게 한다면, 그는 하나님 자신을 그릇되게 만드는 것이다.”
▶ Message
1. Do not judge (v1-2)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하게 된다. 예수님도 위선자들을 정죄하시고, 바울사도도 고전 5:1-5에서 교린도 교회가 부도덕한 행실을 행한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그렇다면, 비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법조인이 되거나 경찰이 되어서 남을 판단하는 직업을 가져서도 되지 않는 것인가?
여기서 사용된 비판하다는 헬라어 ‘크리노’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예수의 제자가 가치 판단을 하는데 자신의 판단력을 적절히 사용할 것을 기대하신다. 하지만 1절은 그러한 가치 판단의 정도가 지나쳐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정죄에까지는 이르는 위험성을 엄중히 경고한다.
건전한 판단은 필요하지만, 타인을 정죄하는 판단은 조심해야한다.
네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동일한 방법으로 네가 판단을 당하며, 네가 사용하는 그 잣대로 네 자신이 측량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가지 잣대를 가지고 있다.
남이하면 스캔들, 내가하면 로맨스다.
남이 껌을 씹으면 버릇이 없어서 이고, 내가 씹으면 입냄새를 제거하여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남을 판단하듯, 남이 나를 판단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판단받지 않기 위해서는 남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되지 않는다.
2. Take plank out of your won eyes (v3-5)
plank - a long narrow flat piece of wood that is used for making floors, etc.
한층 더 강조된다. 형제의 눈 속에 톱밥, 티는 보면서도 왜 자신의 눈에 있는 널판지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눈 속에 널판지를 빼내고서야 남의 눈 속에 티를 빼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을 바로, 외식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탓하고 비판하는 태도이다.
3. Do not give dogs (v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것들이 그들의 발아래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제자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않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않기 위해서는 누가 ‘개’이고 ‘돼지’인지를 판단해야한다. 이는 예수께서 가치판단을 위한 건전한 판단력까지 금지하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무엇일까? 아마도 산상설교에서 지금까지 제공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일 것이다.
마 13:45-46.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지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이 복음은 누구에게나 선포될 수 있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도록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그 가치를 깨닫는 자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것을 배척하는 굳은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오히려 그 발에 붙은 먼지 마저도 떨어내 버려야 한다(10:14).
우리의 전하는 복음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대할때, 우리는 복음이 값싼 복음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우리는 닫힌문이 아니라, 열린문을 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 이민교회에서 조기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때 느꼈던 갑갑한 감정. 이들은 과연 복음의 가치를 알고 있는가?
개나 돼지에게 던져지는 보화나 진주가 되고 있지는 않는가?
▶ Closing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티가 보일 때 내 안에는 들보 같은 허물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겸손한 용납과 더불어 건강한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균형과 불평등 혹은 심한 소외의식의 사각지대와 그늘을 보며, 우리의 섬김과 사역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부상자를 치료하지만, 전쟁을 종결시키지 못하는 간호사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운동가 혹은 시민단체들은 “내가 어떻게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문제를 가진 사람이 적어지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도울 수 있을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담은 소박한 섬김보다는 사회 상황을 분석하고, 특별한 사회 현안을 규정하며, 지역 사회의 자원을 조사하고, 사회개혁을 도모하는 전략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 개혁가는 세상은 변화시키려 하지만, 자신은 변화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세상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어리석다. 편협하다, 허풍쟁이다” 하고 정죄할 때,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일들이 바로 자기 마음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의 잘못된 것을 보며 건전하게 판단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하지만, 그 비극이 우리속에 있음을 먼저보고,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앞에서 바로설 수 있도록 먼저 회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