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6:1~9
Thu 29st Apr 10
김광영 목사
본문
1) 요셉자손 므낫세 지파들의 요구 (1~4절)
마길의 아들 길르앗 종족들이 나와서 슬로브핫의 기업을 그의 딸들에게 주게 한 결정에 대해 이후의 생겨날 문제를 제기한다.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 남자들의 아내가 되면, 그들의 기업이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에도 그 기업들이 그 남편들의 지파에 첨가되어, 슬로브핫의 딸들의 지분은 므낫세지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2)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 (5~9절)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요셉지파의 말이 옳도다.
왜 하나님은 요셉자손 므낫세지파의 주장을 들어 주신 것일까?
그들은 바로 약속의 땅에 대한 언약을 믿고 어느 한 지파라도 기업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는 하나님의 뜻과 맞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민수기 27:1-11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와서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요청한 사건을 되살려볼 필요가 있다.
옛날 법에 의하면 ‘아들이 없으면 기업을 형제에게 형제가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넘긴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아들이 없을 때 딸에게 유산을 넘기는 문제에 침묵을 하고 있었지만, 이 때에 슬로브핫의 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요청하였고, 하나님은 허락하셨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의 편을 들어주시며 슬로브핫의 딸들이 행할 명령을 내리신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종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팔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여인들은 지파 내에서만 결혼해야 했다.
만약 이 여인들이 다른 지파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주장한다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물론 지파 내로 선택범위가 한정되긴 했으나 남자 선택에 있어서 자유로왔음을 나타내고 있다.
후 문맥에 보면 10절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그들이 하나님이 뜻에 순종하는 것을 본다.
그리하며 7절의 내용처럼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는’ 원칙이 잘 지켜지게 된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인데, 약 500년후에 이들 중 세 딸의 이름이 동네이름으로 나타나게 되는 데, 이것은 구약시대에 혁명적인 일이었다.
여인들의 이름으로 동네이름이 남아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이집트의 노예살이로 노예근성에 찌들어 있었음을 안다.
노예근성이란 다름 아닌 아무런 미래에 대한 소망 없이 그저 현실에만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이러한 노예근성은 30년간의 광야의 훈련을 거치면서 진정한 자유민의 모습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본다.
오늘 슬로브핫의 딸들의 사건이 그것이다.
그들은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잠시 그들의 자유가 제한 당하는 것처럼 보이나 미래를 보고 자신의 삶을 투자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롬 8:17-18)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소망하여 이 땅에서 양보와 참아주자.
(벧전 4:13-14)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