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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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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비취 2010. 7. 28.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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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9:1-10

▶ 제목: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새벽설교 Wed, 27th Ju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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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지

 

1. 여리고로 지나시는 예수님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1-5)

 

당시에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28km 떨어진 부유한 사람들이 살던 도시로, 예수님이 이곳을 들어가 지나게 된 것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전문맥 (눅18:35-43)에서 여리고에 가까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부르는 맹인의 눈을 고쳐주셨다. 그리고, 여리고성에 들어왔을 때 한 사람과의 만남의 소개되고 있다.

 

2. 내려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삭개오(6-8)

 

이곳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다.

삭개오란 이름의 뜻은 ‘순결한’ ‘의로운’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는 세리장이고 부자였음에도 사람들에게 죄인취급을 당하였다.

여리고는 국경도시로 세관이 있었고, 유대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안에 있으면서 헤롯의 왕궁이 차지하고 있는, 팔레스틴에서 가장 부요한 도시중 하나였기에 세입 역시 많았을 것이다.

이 도시에 세리장은 자기 밑에 세리들을 고용한 사람으로 직위가 높았다. 삭개오는 이러한 지위에 있었으므로 부정을 저지러지 않아도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쨌던 부정을 저질렀던 것 같다.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키는 작았고 사람들은 그에게 길을 내어 주지 않는다. 그는 막아선 많은 사람들로 인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섰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가게 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세리장이요 부자 그의 나이와 지위에 개의치 않고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을 보고자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상상해 보라. 나무에 올라가 있는 세무서장님..

 

예수님은 그곳에 이르사 삭개오를 쳐야 보셨다. 그리고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신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너무도 놀랐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아실뿐 아니라, 자신이 있는 나무아래 까지 오셔서 오늘 집에까지 유하시겠다는 예수님 말앞에서, 그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 영접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며 비야냥 그린다.

 

3. 삭개오의 구원을 선언하는 예수님(9-10)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신 삭개오는 주님앞에 고한다. ‘주여 보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율법에서는 소나 양을 훔쳐 잡거나 팔았을 경우 소는 5배, 양은 4배를 갚도록 규정했다.(출 22:3)

하지만, 자발적으로 뉘우치고 돌려줄 경우 훔친 물건의 1/5만 더해서 배상하면되었다 (민5:7)

이런 면에서 삭개오의 뉘우침과 배상은 파격적인 것이다.

NIV성경을 보면 8절의 내용에 Here and now라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고, ‘주겠사오며’ '갚겠나이다‘는 동사는 헬라어상 둘 다 현재시제로 삭개오가 즉시하겠다는 결심을 가르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권고를 받고도 고민하며 따르지 아니한 부자 관리와는 달리 이 삭개오는 즉각적이고도 구체적인 행동을 결단했다.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라’선언하신다. 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선언하신다.

죄인인 삭개오 그는 소외의 틈바구니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주님은 잃은버린 자를 찾아 그 삭개오를 찾으시고 그의 집에 유하셨다. 그의 자발적이고도 구체적인 회개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언하신 것이다.

 

삭개오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이런 배상을 약속하였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가? 우리속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거룩한 회개 구체적인 회개가 있는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