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먹으라
▶ 본문- 계10장 8-10절
요한이 천사를 본 것은 그를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그 묵시의 드라마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묵시는 어느 주일 아침 자신이 갇힌 밧모 섬에서 예배드리는 도중에 나타난 난폭할 정도로 거칠고 사나운 환상이었다.
환상의 메시지가 연달아 주어지다가 막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 그는 거대한 천사가 한쪽 발은 바다를, 다른 한쪽 발은 대륙을 디딘 채 손에 책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육지와 바다를 포괄하는 강단에서 그 천사가 그 책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설교는 우레와 함께 큰 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설교는 누구도 졸수 없는 설교였다.
요한은 그 설교를 받아 적으려 했다. 이런 설교를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적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대신에 어떤 목소리가 요한에게 거대한 천사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바다와 땅을 밟은 그 천사로부터 그 책을 받아 먹으라고 했다.
천사는 요한에게 그 책을 주고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있다. 이것을 먹으라. 이 책을 먹으라. 설교를 받아 적지만 말고 이 책을 먹으라”
그래서, 요한은 그 책을 먹어 버렸다.
요한만이 이 책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600년 전 에스겔 선지자도 책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겔 2:8-9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에스겔과 동시대에 살았던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
렘 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
성경을 눈으로 보라는 것도 아니고, 귀로 들으라는 말도 아니고, 입으로 먹어 위장으로 소화시키라는 이 말은 무엇인가?
C.S.Lewis 는 두 가지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책을 이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저자의 목적을 받아들이는 독서다. 하나는 우리가 책을 사용하는 것이고, 또 하는 책을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사용하는 자리에 설 수 없다. 도리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는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고백했던 사무엘처럼 수용하고 순종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우주를 자신의 강단으로 삼고 한쪽 발은 바다를 다른 발은 땅을 디딘 채 성경을 든 강인한 천사의 설교가 요한의 귀에는 우뢰와 같았을 것이다.
요한은 감동을 받아 노트와 연필을 집어 들고 자신이 막 들은 것은 받아 적기 시작했다. 땅과 바다로 울려 퍼지면서 우레처럼 으르렁거리는 문장들을 받아 적기 시작하자마자 곧 제지를 당했다.
그 목소리를 요한에게 천사로부터 그 책을 받아 먹어버리라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말이 너의 혈관을 타고 움직이게 하라. 이 말을 씹고 삼켜서 근육과 연골과 뼈가 되게 하라. 그래서는 요한은 그 책을 먹어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물리적인 방법으로 언급되고 있다.
우리는 말씀을 씹으며(시1:2), 맛보며(시19:10), 말씀 안에서 걷고 뛰며(시119:32), 무엇보다도 말씀을 먹는다
먹는다는 은유로 우리에게 말이나 글로 전해진 말, 기꺼이 받아먹고 맛보고 씹고 음미하고 삼키고 소화하는 말은, 선전이나 정보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선전은 우리의 행동을 조작하기 위한것이다. 그것에 의해 움직이는 한 우리는 작가나 화자의 꼭두각시가 될 뿐이다. 꼭두각시에게는 존엄성도 영혼도 없다.
그리고, 정보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할 수 있는 소모품의 상태로 말을 축소한다. 언어를 소모품으로 만들면 그것을 말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가 소모품으로 축소된다.
우리는 살아있는 목소리를 잠재우고 말을 편리와 이익을 위해 사용할수 있는 것으로 축소하려는 시대에 살고있다.
시편기자는 말씀하시고 우리의 말을 들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람이 사용할 수 잇는 금과 은으로 축소하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115:8).
정보기술과 선전기교의 홍수속에 날마다 살아가는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칫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게 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책을 먹은 요한의 이야기에서 하나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요한이 성경을 먹고 나서 배앓이를 했다는 것이다.
그 책을 자기 입에 집어 넣을 때는 맛이 좋았지만, 그것이 뱃속에 도달했을 때는 배가 아팠다.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10:10)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좋아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또한 우리는 어둡고 외로운 시기에 위로를 줄 수 있는 말씀 몇구절을 외우며 힘을 얻는다.
전에 있던 교회서 송구영신예배때면 축복에 관련된 구절들을 성경에서 뽑아서 카드를 만들어, 가족별로 목사님의 기도를 받은후 카드를 뽑아간 적이 있다. 그 구절의 말씀은 모두가 힘이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들로 성도들은 하나님이 올한해 자기에게 준 말씀으로 알고 기뻐하며 마음에 새긴다.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고 노래한다. 과연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토록 달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우리는 이 책에 있는 것 전부가 다 우리 기호에 맞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시작은 단데, 나중에 보니 받아들이기가 썩 편하지 않다. 뱃속에서 쓰다.
이 책에는 힘든 내용들이 들어있다. 듣기도 힘들고 순종하기도 힘들다. 이 책에는 소화하기 힘든 말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요한은 심각한 소화불량에 걸려버렸다.
우리는 성경에 모든 해답이 있다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러고 그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성경의 텍스트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임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사랑안으로 우리를 눈물짓게 만든다.
그러나 성경에는 또한 모든 질문도 들어있다. 그 중 많은 것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묻지 말았으면 하는 질문이며, 우리가 평생 회피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질문들도 더러 있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실수 있느냐?”
성경은 가장 위로가 되는 책이다. 그러나 또한 가장 당황스러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먹으라, 너의 입속에서는 꿀처럼 달겠지만 너의 뱃속에서는 쓸 것이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에서 이런 영적 독서를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이 우리의 위장으로 들어오듯 우리 영혼으로 들어와서 혈관으로 퍼져 거룩과 사랑과 지혜가 되는 독서이다.
성경은 먹음으로 우리는 깨달음(Information)의 단계에서
삶의 변화(Transformation)로 나아가 한다.
유대 랍비들에 일화가 있다.
제가 스승에게 “제가 토라(모세오경)을 일곱 번 꿰뚫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스승은 “그러면, 토라는 너를 몇 번 꿰뚫었느냐?” 되물었습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것은 바로, 성령이 성경을 통해 나를 해석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되신 것은 단지 사람의 귀에 들리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말씀을 듣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또 하나의 말씀이 되어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몸이 되셔서 마침내 떡이 되신 것은 단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한 것만은 아니셨다. 그것은, 그 떡을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 하나의 떡이 되어 남에게 먹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말씀을 먹고, 그 말씀은 우리로 다른 사람에게 먹히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을 소유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을 읽는 것 만으로 층분치 않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해야 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게 하는 것 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어야 한다. 성경의 말씀을 믿는 것 만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윌리암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