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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교회서 바나바울 바울 파송

영혼의 양식

by 로드비취 2015. 6.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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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12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Wed 1st JUL 2015

 

 

 

 

1.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 구별함

 

안디옥교회 선지자, 교사 곧 지도자들이 소개되고 있다.

첫 이방인지역에 세워진 교회,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로 선교의 분수령이 옮겨가고 있다.

바나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마나엔, 사울

 

특히 대조되는 2신분의 사람이 소개된다.

마나엔은 헤롯의 젖동생이다. 상속자가 될 주인의 아들과 함께 자란 종들은 후에 어릴 때 함께 놀던 그 아들에 의해 자유를 얻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비록 종이었지만, 주인과의 관계 때문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서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인맥이 무시될수 없는 우리 사회다.

시므온은 라틴별명이 피부가 검다는 니게르이다. 이는 그가 로마화된 북 아프리카 해안지대에서 온 유대교 개종자의 후손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서로 다른 출신,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5명의 지도자가 협력하는 건강한 교회였다.

 

우리나라에 3대 연맹이 있다고 한다. 고려대 출신 동문, 전라도 향우회, 해병대 전우회.. 어디가도 기수가 있고 서로 뭉쳐있어 외부인들에 대해 배타성이 그만큼 크다. 이런 지연 학연이 어디 그곳 뿐이겠는가? 우리 사회 어디에나 알게 모르게 뿌리 내리고 있다.

교회에서는 그런 것이 제약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학연 지연도 극복될 수 있고, 복음안에 하나될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가 바로 교회여야 한다. 서울 주은혜교회 사역시, 각 지역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많았는데, 특히 대구출신들이 많았다. 목사님은 지역회 학교별 동호회같은 것을 아예 금지시켰다. 서로 다른 출신이 모여 하나의 교회의 이루는데 이러한 배타성이 공동체성에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5명의 각기 다른 지도자 중에 금식하여 기도할 때, 성령이 말씀하신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안디옥교회는 건강한 교회였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식사시간도 따로 떼어 기도드리고, 무엇보다도 그들 중 가장 유력한 두 사람을 선교사로 따로 내어드린다.

금식하고 기도하여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교회에서 파송했다.

 

우리도 교회에서 탁월한 리더십의 지도자들을 다른 곳으로 파송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안디옥교회도 중요했지만, 또 다른 지역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될 사명을 위해 가장 유능한 인재를 기꺼운 마음으로 보내드릴 수 있는가?

한국교회에 선교를 분들은, 각기 그 나라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미국이나 호주 유럽에 머물러 그 교회만 지켰지만, 우리나라의 복음화는 어떠했겠는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는 캐나다의 감리교 선교사이며, 세계적인 수의학자이며 세균학자이다.

일제강점기의 조선과 독립 후의 대한민국에서 활동하였으며,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을 보도한 그의 활동을 기념하는 뜻에서 “3·1 운동의 제34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만든 한국식 이름 석호필(石虎弼)은 오늘날 Schofield, Scofield 또는 이와 비슷한 이름을 쓰는 외국인의 별칭이 되었다.

 

"조선이 작년에 문호를 열었습니다. 지금 조선은 13백만 명이 되는 사람들이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가난과 질병, 학대 속에서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1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 보냈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조선에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조선을 위해 선교사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1883년 알버트 목사의 호소력 있는 메시지가 미국 '신학교연맹'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1년 전에 이미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었음에도 교회의 무관심과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1년이란 세월을 아무 성과 없이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그날 조선이라는 나라와 민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선교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 그 모임에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두 신학생이 참석하고 있었다.

당시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언더우드는 이미 인도 말을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로 인도에 갈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에게 조선이란 나라에 대한 메시지가 들려왔다.

모임을 마친 뒤 언더우드는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나누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 조선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그 땅, 주님이 기다리는 그 땅으로 갈 선교사가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안타까움으로 집에 들어온 언더우드는 하나님께 조선 땅에 누군가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주님은 언더우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No one for Korea, How about Korea? 한국을 위해서는 아무도 없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때마침 뉴욕의 한 교회에서 언더우드를 목회자로 청빙했다. 조건도 좋고, 교회 측에서도 언더우드를 목회자로 모시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언더우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조선 선교사로 원서를 낼 것인지, 아니면 청빙하는 교회로 갈 것인지를 놓고 고민한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언더우드는 다시금 선교부에 조선 선교사 지원서를 냈다. 세 번씩이나 언더우드의 결의에 찬 모습을 본 장로교 선교부 엘린우드총무 목사는 다른 선교부 목사들과 상의 한 끝에 그를 조선 선교사로 파송 하기로 한다.

 

2. 성령의 보내심으로 선교함

 

바나바와 바울 그들이 마가 요한과 함께 처음 방문한 곳이 어디인가?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환난이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그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 사명의 발걸음의 첫 출발점이었다.

실루기아는 어딘가?

지중해 서쪽 30km 채 못되는 곳. 안디옥의 항구도시이다.

구브로 섬은 바나바가 잘 알고 있던 곳이었고, 그곳에 그의 친척이 있어 (4:36) 자연스럽게 그들의 목적지가 되었다.

바보섬은 구브로의 북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오랫동안 그 지방의 수도였고 유대와의 교역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갑자기 낯선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익숙한 지역, 익숙한 장소가 그들의 첫 방문지였다. 복음을 가까운 곳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가까운 동네의 친구들, 지역의 이웃들에게, 직장의 동료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때 땅 끝까지 이르는 복음이 역동하는 것이다.

찬송가 가사처럼 먼곳에 나가서 전하지 못해도 나 어느곳에 있든지 주님의 증인 되는 것이다.

3. 총독 서기오 바울이 회심함

 

그들이 만난 사람들 중에는 복음에 호의적인 자도, 적대적인 자도 있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으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유대인 거짓선지자 박수인 엘루마는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고후 4:4 이 세상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고 했다.

선교는 영적전투이다. 2:0 사단의 회에 의해 고난받는 서머나 교회가 나온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한다.

악행이 가득한 자, 마귀의 자식, 모든 의의 원수,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자라고 고소한다.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어 소경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성령 충만함 속에 꾸짖을 수 있는 영성이 바울에게 있었다.

17, 8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이 너희를 요란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에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렇게 복음의 유일성에 대해서 단호한 바울. 우리는 과연 주예수의 이름외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확신 있게 전할 수 있는가? 그것은 편협함이 아니라 확신 있고 분명한 선포였다. 예수님 외에 누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노라 한 이가 있는가?

 

바울의 메시지는 이토록 단호했지만, 그의 접근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지혜로왔다. 2절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한 이후 9절에 보면 사울이라고 하는 바울이 성령 충만하여로 이름이 바울로 바뀌는 것을 본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다. 바울은 그렇다면? 로마식이름이다. 이방인 선교를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로마식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아까 언급한 스코필드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석호필이라는 이름을 썼다. 한국인들에게 친근해 지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단호하지만, 복음의 접근방식에 있어서는 다양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거듭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 감비아 선교사 이재동 선교사님을 뵌적이 있다. 쿤타킨테의 후예들 감비아의 가난한 원주민들. 그들과 같이 밥을 먹고 생활을 한다. 한국에 오니 도리어 낯설다고 했다. 화장실에 비데를 만나니 당황스러워 똥도 잘 안나온다고 했다.

이 시대의 청년들 선교를 위해,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교회의 어른들이 청년들을 위해 자신의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천안의 교회 목사님 주일날 청년들이 주일 운동하는 것을 나무라니... 교회를 벗어나 대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그래서 교회 마당에 농구대를 설치했다. 주일에 대한 안식일적 관념을 내려놓고 선교적 접근을 하니 청년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모였다.

서울에서 새가족들이 오니 담임목사님이 함께 볼링을 치러가셨다. ? 운동하며 교제하며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배는 드리고 예배후의 시간을 연령층과 교인들의 기호에 맞게 지혜로운 행동을 하셨다. 물론... 생각따라서는 이것조차도 주일날 오락과 경건치 못한 일을 한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혼을 붙잡을지... 날을 지켜 스스로 경건의 테두리를 칠지는 선택해야할 문제일 것이다.

 

결론

 

적대자의 방해가 도리어 하나님의 이적을 가져왔고, 결국 복음이 힘을 얻게 되었다. 우리 삶에 복음으로 인한 고난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길 기도하자.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기워 질 때는 모든 다른 씨앗보다 더 작아서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나 나중에 자란 뒤 모든 관목보다 커진다고 마가복음 431절에서 32절에 주님 말씀하셨다.

선교의 작은 첫 발걸음이 전 세계를 주님 앞에 굴복시키는 출발점이 되는 것을 본다. 우리교회또한 이 선교적 큰 흐름에 동참하여 나가는 선교든 보내는 선교든, 안디옥 교회처럼 바울이 되어 나가든지, 그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든지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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