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어떻게 하여야

영혼의 양식

by 로드비취 2015. 7. 15. 11:37

본문

 

 

 

 

이 시대 사람들은 감동에 목마르다.

메마른 시대. 각박하고 이기적인 사회,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다.

 

기업의 광고도 그렇다.

어떤 광고가 여러분의 눈물샘을 자극 했나요?
가장 인상 깊고 공감 가는 광고를 알려주세요.’ 이것이 기업 마케팅의 질문이다.

광고가 아닌 감동을 선사하는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강조된다.

 

이렇게 기업의 광고도 단순한 상품선전에서 감동적 기업이미지로 변신하고 있다.

 

타종교와 기독교의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절대 신이신 하나님의 자기 희생이다.

832절 자기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이

벧전 312절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심.

고전 5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함.

 

감동의 원천은 무엇인가?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받을 수 없다.

세상에 감동을 주지 못하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한국초대교회는 어떠했나?

꺼져가는 한국사회에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삼일운동감상담에 보노라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민족을 보우하시샤 우리 삼천리강산에 삼천만 동포가 금일 삼일운동기념식을 개최하게 된 것은 진실로 감사무지한 사실이일 소이다.’

하지만, 삼일운동이후 기독교의 수적성장과 더불어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줄어들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이다.

 

이십이절에서 이십사절 : 바울과 실라가 처한 상황

옷을 찢겨어 벗기운 상황이다. 추운 옥살이를 하고 있다.

많이 친 후라고 했는데, 사십에 하나감한 매를 맞았을 수 있다.

간수를 명하여 지키는데, 이는 소요를 일으키는 중죄인 취급을 하는 것이다.

깊은 옥에 가두었고, 그 발에 착고에 든든히 채워버렸다.

어찌하다 바울과 실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십구절에 보면, 종의 주인들이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고발했다.

귀신들려 점하는 여인을 귀신을 쫓아내어 해방케 한 그 일이

그 여인을 종삼은 주인들에게 이익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귀신에 시달림을 긍휼히 여긴 바울과 여자의 귀신들림을 이용하여 자기 주머니를 챙긴 사람들이 대조되어 나온다.

 

이것이 무슨 감옥에 잡힐 일인가?

하지만, 그들의 고소 목록이 이러하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소란케 하여 로마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이 무리의 송사로,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고,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한 것이다.

주님이 주신 환상. 마케도니아 사람이 고통 중에 와서, 우리를 도우라!” 외친 목소리를 듣고 건너온 첫 성. 빌립보, 그곳에서 주님 말씀 따라 고통당하는 귀신들린 여인의 귀신을 좇아 내었더니, 그 결과가 매 맞고, 옥에 갇힌 것이었다.

 

이십오절을 보면 이 상황속에서 바울과 실라가 하는 행동을 본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고 순종하여 복음전하다 이 꼬락서니가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깊은 옥에 갇혀 발을 착고에 채인 중 한 밤중에

기도소리가 울려나온다. 찬송소리가 나온다.

어떤 찬송.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

 

이 찬송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이 와중에 있었다.

다름아닌 함께 감옥에 갇힌 다른 죄수들이었다.

 

뿐만아니다. 이 찬송을 하나님이 들으셨다.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이었나?

이십육절을 보자.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겨졌다.

 

우리는 무엇무엇 때문에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맥추감사절 우린 어떤 감사를 드렸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송이 있다. 상황의 어떠함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주권을 믿기에 드리는 찬송이다.

하박국의 찬송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남나무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난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리

 

야고보사도는 야고보서 오장십삼절에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들이 있느냐 저는 찬송할 것이라.

바울과 실라는 고난 중에서 기도와 찬송을 다 드리고 있다.

 

천안에서 사역할 때,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학입학시험, 신학대학원입학시험. 어려운 중에 좋은 점수로 잘 합격하여 감사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누군가 질문을 했다.

전도사님, 그 때 시험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처럼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해 보니, 큰 시험에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 성도님께 그래도 하나님 은혜와 주권을 믿고 감사드리겠지요

그해, 강도사 고시가 있었다. 여섯 과목 중 한 과목의 과락으로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고 황당한 사건이었다.

신학대학원에서 장학금을 성적에서 5%안에 들어야 준다. 그만큼 장학금 사정이 짜고 열악하다. 대학시절에는 10%안에만 들어도 장학금이 있었다. 문교부인가 M.Div과정에 353명중 약 20등안에는 들어야 5%성적으로 성적장학금을 받게 된다.

그 장학금을 신대원에서 한번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두명 중 한명은 붙은 큰 확률의 강도사고시는 그냥 패스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엠알카드로 객관적 점수분류가 아닌 목사님 한분이 심사하는 설교시험에서 나를 낙제시킬 줄은 몰랐다. 여러분은 지금 강도사 고시 시험 설교과목에서 탈락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계신 것이다.

이제, 과연 황당하게 떨어진 시험결과를 붙잡고, 내 태도를 결정해야할 시간이 왔다. 마음이 쓰리고 아프고 집에 들어갈 면목도 없고 생각도 많았지만, 의도적으로 감사를 드렸다.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읊조렸다. 예배당에서 억지로라도 감사기도를 드렸다.

천안의 교회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이 사실을 이야기하기가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목사님이 하신 말

목사안수가 한해 정도 늦어지는 것이니 크게 염려하지 말게

 

강도사 재수 일년을 보내며 내 삶을 담금질하시고, 내공을 깊게 하시는 주님의 오묘한 섭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읽은책 땅콩박사 조지워싱턴 커버의 전기를 읽었다.

서문에 나를 올라온 높이로 재지말고, 헤쳐나온 깊이로 재어 주시오라는 말이 있었다.

내 삶을 더욱 여물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와 인도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해서, 부산중앙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의 사역자를 구하는 조건이 전임전도사였다. 신대원 막 졸업한 전도사를 구한다는 문구였다. 강도사인허를 받았다면 부산중앙교회에 원수를 내기가 머뭇거려졌을 것이다.

강도사 재수를 하고 목사안수를 남부산노회 남천동 성산교회서 받았는데, 십구명의 안수자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젊어 사진이 맨 끝에 실렸다.

젊은날. 내 삶을 연단하시고,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때임을 깨닫게하는 사건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이렇게 옥중에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간수는 옥문이 열려 죄수들이 도망하는 줄로 알고 검을 빼여 자결하려 했다.

베드로가 헤롯의 명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천사가 꺼내줌으로 간수들이 처형당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목숨으로 그 목숨을 맞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분명한 외침이 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는 무서워 떨며 부복한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때에, 그 질문앞에 그 유명한 말씀이 나온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그 간수와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다.

저희를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기고

그 권속이 다 세계를 받은후

자기 집에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또한, 날이새매 상관들이 바울의 일로 두려워 한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바울이 로마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 청한다.

바울이 처음부터 자기에게 이런 권한이 있다는 것을 말했다면

매맞고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는 권한을 함부로 쓰지 않고,

또 사장시키지도 않고,

적절히 사용하는 절제와 지혜를 본다.

 

빌립보의 관원들이 바울을 보며 어찌 두려워떨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우리성도는 복음의 감동이 되고 있는가?

복음의 장벽이 되고 있는가?

만일,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이 이 기회에 탈주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 빌립보에 생겨진 빌립보교회는 탈주범을 따르는 무리로 오해를 받았을 것이다.

 

참된 증인의 삶은 질문이 있는 삶이어야 한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너희속에 있는 소망에 대해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이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우리에게 소망을 구원을 묻는 자들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빌립보 감옥 유적)

 

입술의 증거와 함께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균형잡혀야 한다.

전도는 삶뿐만 아니라 말로도 증거되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김광영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