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모세의 죽음에 이스라엘 백성은 큰 슬픔에 잠겼다.
문제는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이다.모세 없는 이스라엘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모세를 잃어버린 백성들이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큰 고민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 가나안으로의 여정가운데, 홍해바다를 극적으로 건너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며,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무려 40년간이나 광야 행진을 계속합니다.
지도자 모세와 이스라엘백성은 40년간의 광야생활을 지내며 이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가나안땅에 거의 다다르게 됩니다.
가나안땅이 어떠한 땅입니까? 팔레스타인이라고도 부르는 이 가나안땅은 지정학적으로 갈릴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요단강이 중심에 길게 이어져 있는 그야말로 비옥한 옥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 드디어 이 요단강의 서편에 도착했습니다.
이 요단강 서편의 땅은 모압과 암몬사람들이 차지한 땅이었었는데 이스라엘은 이들과 싸워 이기고 이 땅들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동안 모세의 지도력은 너무나 강력했고,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지난 40년간 모세외에 다른 지
도자는 생각도 안해봤는데, 이제 어디가서 이런 지도자를 찾는단 말인가?”
“누가 우리를 인도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할 것인가?”등등... 심한 절망감에 빠진 반응들을 보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은 깊은 불안과 위기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서로 수군거리며 “이러다가 우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여기 요단 서편에서 그냥 이렇게 사는 거 아냐?”하며 망연자실 넋을 잃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스라엘은 중요한 한가지 진리를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여기까지 인도한 지도자는 엄밀히 말해서 인간 모세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여정과 그 인도는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계획하심에 전적으로 좌우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성경의 첫 장면은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의 지도력을 여호수아에게 이양하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 “내 종 모세는 죽었으니” 이스라엘을 40년동안 누가 인도했나? 모세였나? 하나님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크게 통곡한다. 하나님이 죽으셨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모세의 죽음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루터가 심한 좌절감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소복 입은 아내가 루터에게 “하나님이 돌아가셨소” “아니 무슨 정신없는 소리요?”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죠?” “그럼” “그런데 왜 당신은 그렇게 좌절해 있는 겁니까?”
가나안 입성의 새로운 임무를 위해 여호수아를 새로이 준비하셨다.
이 사건은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진리 하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젼은 어느 한 사람의 생애에서 시작해서 어느 한 사람의 생애와 함께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젼을 위해 한사람을 크게 쓰시기도 하지만, 그것이 완성되기 까지 모든 세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의 계획하심 속에 참여시킨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리더쉽과 여호수아의 리더쉽, 40년간의 리더쉽이 체인지 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여호수아를 따라 줄 수 있을까? 하나님이 새로운 영적 권위를 부여해 주신다. 모세의 시대는 가지만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신다.
2. 너는 일어나 가라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라. 애통과 좌절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일어나라는 말을 성령의 음성으로 듣기를 바란다. 주저앉은 신앙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요단강을 건너가라. 새로운 비젼이 주어진다. 신앙의 잠에서 일어나고 요단강을 건너라.
여기 앉은 성도들이 일어나면 교회가 살고 이 나라가 산다. 하지만 주저 앉으면 희망이 없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사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은 차기 지도자로 세움을 입었지만 여호수아에게는 초기의 모세만큼이나 마음이 약하고, 담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일개 모세의 시종이었던 사람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인도하고, 전쟁을 지휘하는 일에는 더더욱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찾아왔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자신이 이 일을 하기에 부적합한 자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능력이 없고, 자신도 없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네? 제가요?”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이러한 점을 간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무턱대고 밀어부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세가지 약속
첫째, 땅을 주겠다. 발바닥으로 밟는 땅. 그 영역, 창12장 이래로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한 땅을 주신다.
사람들은 약속을 잊었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땅을 주셨다.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믿는다. 말씀이 생명이 되려면 붙들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너의 발바닥으로 밟는 땅. 교회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 곳을 너희에게 주겠다.
우리를 들어 우리의 밟는 땅에 그리스도의 주권이 완성되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면 그 곳이 하나님의 땅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이 과업을 이루길 원하신다.
둘째, 여호수아를 강하게 하시겠다. 사람들의 방법이 다양하다. 이 자리의 여기 앉은 우리는 인간의 탑은 아무리 높아도 모래성에 불과하다.
우리의 강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우리의 강함의 원천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심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된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나니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나에게 있지 않음이라. 우리는 질그릇 처럼 깨어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우리 안에 있어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날마다 새롭게 하며 살 때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악기중에 가장 비싼 것중 하나가 하프라고 한다. 우리가 볼때 하프연주자는 유유하게 선을 뜯는 듯 보이지만, 치마를 둘러 우리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발로 이리저리 부지런히 밟는 다고 한다.
직분이 타이틀이 영혼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리가 물에서 유유히 노니는 것 같지만, 물에 떠 있기 위해 물 밑을 보면 발을 계속 움직이고 있다. 집사라는 장로라는 권사라는 타이틀이 신앙을 보장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말씀과 기도 가운데 있을 때 영성이 유지된다.
셋째, 동행의 약속, 임마누엘의 약속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니. 가나안으로 보내실 뿐 아니라, 여호수아와 함께 하겠다.
시51편 11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옵소서” 범죄한 다윗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약속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마28장 마지막 문장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그 세미하신 하나님의 인도의 손길을 느끼고 있는가?
믿음의 반응이 여호수아에게 필요하다. 7-9절의 말씀이다.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먼저, 강하고 담대하라. 다음으로 율법을 다 지켜행하라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음.
먼저, 강하라. 두려워 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편에 서 있기만 하다면 강할 필요가 있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사43:10, 시23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리로다.
푸른초장 푸른초장 .... 헬기로 음침한 골짜기를 넘어가게 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두려워 아니하는 것이다. 물가운데 지나도 물이 우리를 엄몰치 못하고 불이 우리를 사르지도 못한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자. 세상의 어떠한 줄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백(back)으로 삼으라.
6,7,9절이 점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격을 걸고 약속하시는 말씀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지도자는 반대자들의 반대를 이길수 있어야 하고, 전쟁에서 자기 사람들이 이길수 있도록 지휘해야 하는데 여호수아는 그것을 제일 먼저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내게 그 일을 감당한 능력이 있단 말인가?”...
우리들도 종종 그런 변명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그런 생각을 어떻게 간파하셨는지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라는 너무나 확실하고도 분명한 조건의 약속들을 제시하시면서 이 사역에 담대히 헌신할 것을 격려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절실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며, 헌신하려고 할때 가장 크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걸림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일을 감당하기에 도무지 능력도 없고, 자신도 없다는 자기인식입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죠” 아주 겸손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전에도 그러셨지만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의 지혜와 능력, 자신감으로 이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둘째,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것을 무엇으로 아는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은 거처를 우리로 함께 하신다.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말이다.
말씀을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삼자. 신앙인의 승리의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이 커 보이고, 세상이 작아보인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있는가? Q.T를 잘하고 있는가? 사람에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힘의 원천으로 알고 있는가?
※ 정곡을 콱 찌르며
위대한 모세의 죽음으로 불확실성속에 침울 한 때,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사 당신의 일을 하신다. 우리의 짧은 세대에 벽돌한장 쌓는 것이다. 모세도 죽었고, 여호수아도 죽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선생님의 시대도 선배들의 시대도 지나간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들어 쓰고자 하실 때 우리는 잘 준비되어있는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보시고 ‘네 마음속에 들어가 너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실 수 있는 삶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