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1-13
Tue. 9th Jun 09 DayBreak
신랑이 온다. 기름은 준비했는가?
Rev. Kwangyoung Kim
6절에서 외친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이 외침은 마치 노아의 때에 갑작스레 홍수가 쏟아 부은 것과 같다.
도둑이 예기치 못하게 침입한 당황스러움이다.
여행에서 집주인이 예기치 않게 느닷없이 돌아온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 모든 비유에서 예기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바로 그 갑작스러움 때문이다.
위기가 문턱에 다다라 있다.
한밤중에 외쳐진다. 그 외침은 두 무리로 가차없이 갈라놓는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 때를 맞는 이들에게는 저주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말이 임박했음을 항상 기억하고 깨어있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랑은 예수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셨다.
(마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또한,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주 신랑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신랑으로 나타내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등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1절)는 누구인가?
신부의 심부름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신랑의 종들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들은 신랑이 결혼 축제에 가는 길을 횃불을 들고 수행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들이었다.
열처녀 중 다섯은 지혜롭고 다섯은 어리석었는데(2절) 이 차이는 24:45-51 전문맥에에서 종들의 비유에서도 나왔다. 이는 준비성과 비준비성 그리고, 그 결과 받아들여짐과 내쫓김 사이의 현격한 대조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신랑이 늦게 옴으로, 어리석은 자나 슬기로운 자나 모두 잠에 들었다는 것이다. (5절하) 준비한다는 것은 끊임없니 적색경보안에서 긴장하며 산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 주님이 오시든지 그분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자들은 오히려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한번 어리석은 자들의 어리석음이 잠든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등잔에 넣을 기름을 마련하지 못한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
밤중에 모두 졸며 잘 새, 신랑이 갑작스레 도착하자. 어리석은 자들이 슬기로운 자들에게 부탁한다. ‘우리 등이 꺼져가니, 우리에게 너희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8절)
그러자, 슬기있는 여인들의 대답이 무엇인가? 9절을 보자.
어찌 보면 매정 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마지막 때를 위한 준비성이란 스스로 책임질 문제이지 다른 사람의 준비성에 의존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13절의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라는 주님의 결론은 앞 문맥의 도둑비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깨어있는 것은 문자적으로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본 비유는 ‘그 날짜와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 끝난다.
우리는 ‘기름 없는 등불’을 들고 서 있지는 않는가?
역사적 종말이든 개인적 종말이든 우리 주님 맞을 기름을 준비하였는가?
신앙적인 껍데기는 있지만, 영적생명과 긴장감을 상실한채 종교인으로 살고 있지않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우리 등불에 기름을 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