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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기도 한나의 찬송 - 삼상2장 <김광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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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비취 2010. 6. 2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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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읽은 삼상2장의 한나의 기도는 삼상1장의 한나의 기도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마치 뭔가가 가슴 가득히 꽉 차서 터져 나올 것 같은 그런 감격이 있다. 또한 구름 위를 나는 것 처럼 흥분된 기도이다. 그 즐거움과 찬송은 어떤 배경에서 태동한 것인가?

1. 한나의 첫 번째 기도

1) 한나의 괴로운 기도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그의 이 괴로운 통곡의 기도 때문에 당시의 성전의 제사장 엘 리가 와서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나무란다.

한나가 대성통곡을 한 것인가? 아니다. 13절을 보니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였다.’ 엘 리가 그 광경을 보니 마치 포도주에 취한 것 처럼 보인 것이다.

그 때, 한나가 대답한다. 15절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알지 마옶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니이다.’

한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은 무엇으로 인한 것인가?

한나가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한채 속으로 또 입술로만 간구하는 그 간구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2) 한나의 아픔

 

1장 1-9절이 그 내용이다.

에브라임산지에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 아내가 있었다. 한나와 브닌나이다. 한나는 무자식인데 브닌나는 자식이 있다.

그들이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하여 제사를 드린다.

실로는 엘가나의 고향인 라마에서 30km가 채 못되는 거리에 있었고 다윗의 군주정치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가장 중요한 예배처소였다. 성막과 언약궤가 그곳에 있었으며 전 이스라엘이 매년 그곳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삿 21:19).

이 거리라면 걸어서 하루에 왕복할 수 있었는데, 제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라 2~3일 정도가 소요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동 중에 남자는 따로 그리고 여자는 여자들끼리 비슷한 처지에서 생활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브닌나와 한나가 있을 때 였다.

엘가나는 제사 드리는 날 제물의 분깃을 그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다. 왜?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성태치 못함으로 브닌가가 한나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한 것이다. 이ㄴ일이 매년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갈 때 마다 반복된다. 남편은 갑절로 한나에게 주고, 브닌나는 그를 격동시키고... 그야말로 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삿날이 한나에게는 제삿날 같았다. 그녀는 울고 먹지 않는다.

아내의 울음을 본 엘가나가 한나에게 말한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남편의 극진한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나의 울분을 그리고 아픈 마음을 다스려 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사람의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의 괴로움은 기도가 되었고, 통곡하며 서원하며 기도한다. 12절을 보니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 기도의 내용은 간단하다. 애기 없는 여자가 뭘 기도했을까요? 이 질문이 우문이다.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바로, 아들이 문제였다. 그런데, 우리가 1장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말을 보아서 알지만 왜 아들을 한나는 낳지 못했나?

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이 한나에게 아기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일까? 우리는 한나처럼 괴로움을 당하다고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시편의 많은 부분들이 그런 애통의 기도가 많다.

시 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 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k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 22:1-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소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은 왜 한나에게 잉태하지 못하게 하시는것인가? 여러분 대답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다음장을 넘기기 전까지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한나가 그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이며, 그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했다는 것이다.

3) 엘리의 선언

 

엘 리가 그 모습을 보고, 대답한다. 17절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통곡과 아픔으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입술로만 술취한 여자처럼 성전에서 기도하던 한나 하지만, 제사장의 이 선언을 듣고, 18절에 보면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 수색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제사장의 말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믿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고 있는가? 아이가 울고 있다. 선물을 사주겠다고 아빠가 약속했다. 아이는 곧 눈물을 그치고 즐겁게 논다. 왜인가? 아빠의 말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응답의 약속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불안하거나 불신하여서 여전히 초조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누가복음 11:10-13 the MSG 번역

‘하나님과 흥정하지 말라. 솔직하게 말씀드려라. 필요한 것을 구하여라. 우리는 쫓고 쫓기는 게임이나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 어린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살아 있는 뱀을 접시에 담아 아이를 무섭게 하겠느냐? 너희 어린 딸이 계란을 달라고 하는데, 거미를 주며 아이를 속이겠느냐?

너희가 아무리 악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자기 자식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 그렇다면, 너희를 사랑으로 잉태하신 아버지께서 너희가 구할 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 주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숨바꼭질 하는 분이 아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잉태하신 아버지시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렀을때 엘가나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셨다. 한나가 잉태하고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다.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뜻이다.

 

2. 한나의 두 번째 기도

 

한나가 아이를 젖을 떼고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 여호와께 드리고 경배한다.

 

그리고, 본문의 기도는 찬송이 되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한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아픔과 슬픔의 자리가 원망과 불평의 자리가 아닌 간절히 기도의 자리가 되었을때

하나님은 그 아픔을 노래로 바꾸어 주셨다.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기도할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곳에서 우리의 위로와 소망이 없기에, 오직 모든 것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우리 마음을 쏟아 놓는 것이다.

찬송가 가사처럼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변하여 내 찬송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최근에 주님 앞에 우리의 심정을 토하며 기도한 적이 언제인가?

이번 주에 교회당에 조용히 앉아 기도하며 찬송을 부르는데, 벅차오르는 뜨거운 눈물로 인해 기도와 찬송에 목이 매었다. 내 삶에 겹겹이 쌓아두었던 아픔들과 고통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눈물을 닦고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찬송을 부를 수 있었다.

내 삶에 환경이 당장에 나아진 것은 없다. 하지만, 주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 눈물을 보셨다는 확신 때문에 그 분께 내 삶의 고민과 염려를 던져 버린 것이다.

 

찬양대 헌신예배로 드리는 오늘 오후, 우리에게도 한나 처럼 감격과 흥분과 기쁨의 찬송을 부르기 위해서는 주님앞에 쏟아놓는 눈물과 통곡이 있어야 한다.

한 등대지기가 암벽해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한 달에 한 씩 기름을 받아 등대 불을 간수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멀지 않다보니 손님들이 자주 왔다. 하룻밤은 어떤 여자가 집 난방에 필요하다며 기름을 구했다. 또 다른 밤에는 어떤 아저씨가 등잔불을 켠다며 기름을 청했다. 그럴듯한 요구라 모두 들어주었다. 그러나 한달이 다되어 가자 기름이 떨어졌고, 등대는 불을 켤 수 없었다. 그 밤에 몇 척의 배들이 해안에서 좌초되고 서로 부딪쳐 깨어졌다. 상부에서 조사가 나왔고, 그 등대지기를 질책했다. ‘당신에게 기름이 공급된 것은 한 가지 이유 즉 등대를 밝히라고 준 것이요.’

우리에게 고통을 준 것은 그 고통으로 기도하라는 사인이다. 우리는 그 고통을 원망와 불평으로 낭비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고통이 기도의 무릎으로 드려질 때 우리 삶은 빛을 밝힐 수 있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고통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응답이 되어 영혼깊은 찬송으로 우리는 주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 84:1-8)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그들이 눈물골짜기로 지나갈 대에 그 곳에 많은 샘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찬양대의 찬양도, 우리 성도들의 찬양도 그렇게 눈물골짜기를 통과한 진주 같은 찬송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