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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26~33 누구를 위하여 울 것인가?

영혼의 창

by 로드비취 2010. 8. 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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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26~33 (날마다 솟는 샘물 8월호 본문)

누구를 위해 울 것인가?

Mon, 23th Aug 10

  부산중앙교회 새벽설교 김광영 목사

■ 본문과 씨름하며

 

1. 구레네 시몬과 예수를 위해 우는 여자들(26-27)

 

예수님을 빌라도에게서 넘겨받은 무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십자가를 지게 하여 예수를 해골이라하는 곳에 못박게 하기 위해(32-33절) 끌고감(26절)

저주 받는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이때, 그 길 중에서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였다.

왜일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왜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지워진 것일까?

 

사형수들은 보통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어있었는데 처형장까지 교수대의 가로대를 짊어지고 같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처형이전에 심한 태형이 시행되어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가기도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시몬은 전형적인 유대식 이름이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서북쪽에 위치한 현재의 트리폴리인데 이곳 출신인 유대인 시몬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았다. 지중해 연안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간 동안 순례자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다.

 

상상해보면, 모처럼 예루살렘에 왔다가 큰 구경거리를 만났는데, 우리말로 재수 없이 걸려든 것이지요.

좀 더 가까이서 구경해 보고 싶어서 제일 앞자리로 밀고 나아갔다가 그만 로마 군병의 눈에 띄이게 된 것입니다. 적어도 십자가를 대신 질 정도라면 구레네 시몬의 체격은 꽤 건장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가복음 15:21-22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러...’

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구경 중에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여기서 가장 강조되는 표현은 '억지로'라는 말입니다.

동사를 주목해 보면 붙들어.. 지워... 따르게... 한 것이다.

 

예배하러 온 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지게 된 것이다. 그는 비록 자원한 것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십자가를 짐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의 흔적이 로마서에 기록이 된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보면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임이라"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 중 하나입니다. 두 아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까지 주의 종 바울을 위하여 좋은 믿음의 동역자로서 희생하며 수고했다고 바울 사도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한 구레네 시몬은 그 가족들이 초대교회 바울의 동역자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써 때로 이렇게 억지로라도 고난의 길에 동참하고 있는가? 우리의 걸음은 어떠한가?

 

그 길에 백성과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있었다.

주님은 그 여인들에게 돌이켜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신다.

심판의 날이 이르면,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으리라 하신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신다.

푸른 나무는 무엇인가? 이것은 싱싱하고 힘찬 것으로 무죄한 이미지를 나타낸다. 반면 마른 나무는 늙고 힘없는 것으로 거짓되고 죄악 스러운 것으로 이해한다. 죄 없는 푸른 나무 예수님도 이렇게 고난의 자리에 가셨다면, 죄 많고 불의한 유대인들이 어찌 심판을 피해갈 것이냐는 경고인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인해 울고 있는가? 임박한 심판 앞에서도 회개하지 않아 멸망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마른 나무를 보고 통곡하며 울어야 할 것이다. 우리자신과 무너져 가는 이시대의 가정과 사회와 교회를 바라보며 애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성취의 정점인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골고다로 올라가는 죽음을 향해 치다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십자가를 지지 못할 정도로 쇠약하셨고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간다.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여 울고 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우리죄가 얼마나 무겁고 악한 것인지 회개해야한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렇게, 우리 죄를 정결케 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붙들자. 또한, 주님의 말씀처럼 마른나무처럼 심판의 불길을 피해갈 수 없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바라보며 통곡하며 중보의 기도를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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