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작은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어린 묘목가지에 불과했지만 과수원 주인은 흙을 손질해 주고 물을 충분히 뿌려 잘 보살폈다. 작은 살구나무는 장애물들을 극복하셔 쑥쑥 자랐다.

작은 살구나무는 주인을 위해 이 과수원에서 가장 좋은 나무가 되고, 가장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야다짐했다. 실패에 대한 생각은 아예없고 오로지 최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과수원 주인이 다가왔다. 보통 때면 주위에 물을 주고 흙을 살펴 보았을텐데 그 날은 달랐다. 어린 나무 줄기를 움켜 잡더니만 묘목을 단단히 감싸쥐고서 순식간에 도끼를 집어들고 나무 밑중을 홱 잘라 버렸다.

...

완전히 버림 받은채 모든 꿈이 깨어지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살구나무는 어둠속에서 절망했다.

가장 좋은 살구나무가 되는 것이 내가 바란 전부였어, 그렇게 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가장 좋은 지팡이가 되는 것만을 바랬어, 그런데 이젠 우리는 완전 잊혀지고 없어질 존재가 되었어'

 

...

 

살구나무의 삶은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끝나는 것 처럼보인다.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발가벗겨진 채 모든 공격에 아무 힘없이 노출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어떤 것인지 느껴본적이 있는가?

결혼생활에서, 혹은 회사의 구조조정에서, 또는 의사와의 면담에서, 혹은 부당한 법적 판결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런 경험을 해 보았는가?

살구나무 지팡이의 꿈은 내동댕이쳐졌고 영원히 좌절된것 처럼보인다. 그는 자신의 때가 이르기도 전혀 무참히 잘려졌고 전혀 다른 목적에 사용되었다.

당신이 이렇게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큰 의문이다. 구명보트에서 물이 샐 때, 공중에서 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때, 마지막 청구서를 지불하기 전에 동전 한 닢도 남지 않고 다 떨어졌을 때, 마지막 희망이 마지막 기차와 함께 떠나 버렸을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아주 중대한 문제이다. 만일 하나님이 잠들어 계시다면 우리는 얼간이가 될 것이고, 만일 그분이 웃고 계시다면, 우리는 난감해 질 것이다. 만일 그분이 팔짱을 끼고 머리를 흔들고 계시다면 그리고 일손을 놓고 계신다면 우리는 패망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살구나무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 한다. 휘장 뒤에 서 있다고 해서 오페라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연이 끝난 관중들의 박수 갈채로 배우를 막앞으로 불러 낼 때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른 막대기에 불과한 살구나무 지팡이가 세포들을 통해 흐르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게 되었다. 지팡이로 수분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일이..? 살구나무의 뿌리는 이미 없어졌고, 껍질도 다 벗겨진 채 바싹 말아있다. 오랫동안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어있다. 뿐만 아니다. 마르고 오그라들었던 세포들이 있었던 자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옆구리 부분에서 움이 터 자라고 있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반대쪽 표면에서도 싹이 움터오고, 가장 먼저 피어난 싹에서 꽃이 피기시작한다. 어둠속에 빛이 없이 뿌리없이 버려진 살구나무 지팡이에서 말이다.

 

살구나무가 버림받은 기분으로 가장 낙담한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일이 일어난다.

 

[4]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증거의 장막 지성소안 증거궤 앞에서 살구나무는 생명을 맛보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살구나무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계획은 종종 내 꿈들이 죽어가는 바로 그 순간에서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보낸 하룻밤이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람이 되는 과정을 가속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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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 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9-10)

 

 얼마전 러빙 빈센트를 보았다. 8년간 800점의 그림을 남겼으나, 생애 단 1점 밖에 팔지 못했다는 빈센트. 지금 그 거장의 천재성을 알아보며 찬사를 보낸다. 4000여명의 지원자 중 107명의 화가를 선별해 그렸다는 2년간의 고흐 작품 130작품을 중점으로 유화로 그린 독특한 영화였다.

 안재경의 <고흐의 하나님>을 보면 아래 내용이 있다.

빈센트는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려고 했다. 성경을 너무도 사랑했고 성경대로 살려고 매달렸다. 전도사 양성 학교에 다니면서 광부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보리나주 탄광촌에 들어갔다. 그는 단지 앵무새처럼 교리만 외워 전하는 전도자가 아니었다. 고난을 당하는 광부들에게 자기 옷과 음식과 돈을 다 내주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스스로 광부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자처했다.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격정적으로 분노하고 저항했다.

그는 매사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매춘부를 측은히 여겨 아이들이 딸린 그녀와 동거했고, 농부들을 그릴 때는 농부와 다를 바 없이 살았다. 또한, 화가들을 위한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자 했다. 그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이 뭉클하다.

 나의 유일한 걱정은 내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 유익을 줄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빈센트를 부담스러워했고 감당할 수 없었다. 그가 미쳤다고도 했고 실제로 그는 미쳐 가고 있었다. 미치도록 사랑했고 사랑 때문에 더욱 미쳤다. 그의 비극은 하나님과 이웃을 너무 고지식하고 진지하게 사랑했다는 데 있었다.

빈센트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면서 스무 군데 이상 거처를 옮겼다. 평생 걸었고 흙먼지로 뒤덮인 그의 구두는 언제나 너덜거렸다. 정처 없는 나그네 삶이었다. 그가 전도사로서 행한 첫 설교의 주제도 나그네의 삶이었고 자신의 설교대로 살았다. 반 고흐가 남긴 구두 연작을 일컬어 글쓴이는 땅에 대한 애착과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질박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찬사라고 했다

 빈센트가 가장 좋아했다는 성경구절 고흐의 고후6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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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27~35

예루살렘에서 결박된 바울

 

 

 

 

 

루머로 인한 피해

 

1. 바울이 예루살렘에 이를 때 형제들은 어떻게 하는가?

: 기꺼이 영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바울이 자기봉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방인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함.

 

2. 예루살렘 형제들이 바울에 대해 걱정하며 제안한 것은?

 

: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히 있는 자들이다.

저희가 바울이 이방에 있는 유대인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함을 들었다.

그러므로, 서원한 4사람을 데리고 가서 결례를 행하고 머리를 깎게 하여 오해를 풀라고 한다.

->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고,

바울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 일에 순종한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결례가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26)

-> 우리 삶에 분명히 다투어야 할 것이 있고, 지혜롭게 피해가야 할 일도 있다.

 

3. 그 이레가 찼을 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한 일은?

 

바울이 결례를 행하는 기간 각종 희생 제물의 비용을 치루고 그들의 희생제사에 참여고 있던 그 때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잡는다. 바울이 유대인 정적들과 오해를 풀기위해 결례를 행하러 갔다가 성전에서 체포되 것이다.

이 사람은 각 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였다.’

-> 바울이 범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예견된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바울의 태도를 본다.

 

-> 전문맥 사도행전 218절 이하에 보면, 일곱집사 중 하나인 빌립의 딸 넷이 처녀로 예언하는 자로 있었고,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유대로 부터와 바울에게 예언했다.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 매고 말한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사람들이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로마와 스페인도 보아야 하리라는 그의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결박되고 혹은 순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의 지시에 순응하고 있다.

-> 아브라함도 자기 씨로 하늘의 별처럼 번성케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연기처럼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코자 여행길을 떠났다.

 

4. 반대자들의 모함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고 모함한다.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전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간 줄로 생각한 것이다. 예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중에 있는 바울을 보았다고, 그 이방인이 분명 바울과 함께 성전 뜰까지 들어왔다고 억측한 것이다.

 

-> 이일은 바울인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가졌던 관계로 인해 일어났고. 바울은 그 관계를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예루살렘 성에까지 데려간 것을 성전에 들어갔다고 확대해석한 것이다. 바울에 대한 적개심을 유도하기 위한 부풀리기 언론 플레이.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의 입소문 루머에 동요되어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도 없이 다른 사람을 곤란에 빠뜨리는 일에 동참한 적은 없는가?

 

-> 예루살렘은 긴장이 고조되어 성전에는 시카리라고 하는 식칼?든 칼 든 자객들이 이방인과 손 잡았다고 의심받는 귀족들을 암살하고 있었다. 유대 민족주의가 상승세를 타면서 그 민족주의 배타성은 소위 충성스러운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일원과 교제하는 것을 용납지 못하게 만들었다.

 

 

-> 벨릭스 전 로마총독이었던 쿠마누스 치하에서, 한 로마 병사가 성전부근에서 자기 몸을 드러냈다가 그 뒤에 발생한 소요사태로 만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전한다. 또 다른 병사가 유대인의 율법책을 불태웠을 때 쿠마누스는 군중들의 요구에 의해 그 병사를 처형했다.

이방인에게 허용되었던 뜰과 여인들의 뜰을 가로막는 장벽은 1.3m가 조금 넘는 것으로 곳곳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곳을 넘어오는 외국인들은 누구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라

이 일은 유대인 관원들이 로마와 상의하지 않고, 심지어는 로마시민에게조차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금지조항 중에 하나였다.

 

 

5. 바울의 구원

 

온 성이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나가 문이 닫혔다.

이때,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려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갔다.

바울치기를 그친 무리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실상을 알 수 없었다.

그를 죽이려 매질하던 유대인의 손에서 벗어나 영문 안’ (안토니안 요새)으로 들어갔고, 백성의 무리는 그를 없이하자며 외치며 따라갔다.

 

-> 예수님이 걸어갔던 그 길을 걸어가는 사도바울. 성난 무리의 외침 속에 매질당하고 죽음의 순간까지 가야 했던 바울. ‘그를 없이하자는 외침 또한 눅23:18에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들이 외친 소리였다.

 

-> 836.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모습이다. 우리 삶이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도 신성한 특권이요 사명임을 알고 있는가?

바울은 반대자들에게 수도 없이 매를 맞고 여러번 죽을 뻔했으며, 유대인들로부터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후 11:23,24).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순간에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음을 인해 도리어 자랑스러워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당하고, 욕을 먹고, 쫓겨나고, 손해를 당해도 그것으로 참으로 기뻐할 수 있겠는가?

 

찬송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 날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 봅니다.

 

-> 이런 죽음의 위기의 순간, 바울을 구하고자 로마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23:26)를 급히 내려 보내시는 하나님. 그 분이 허락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람을 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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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3~27

성령이 내게 증거하여

 

바울의 행보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 행선하게 되었는데 이는 바울이 도보로 가고자 선교일행을 이렇게 정하여준 것이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일행을 먼저 보내고 해안도로를 따라 앗소까지 약32km를 혼자 도보로 여행한다. 그리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짐하여 깊은 교제를 주님과 나눈다.

우리에게 이런 고독의 시간이 있는가?

어떤 일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독하게 서야하는 시간이 있다.

 

2. 급히 예루살렘 길에 오른 바울

 

앗소에서 만나 배에 바울이 합류한다.

앗소-미둘레네-기오-사모-밀레도

이틑날, 이틑날, 다음날이라는 말로 얼마나 신속히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완급이 조절되는 대조적인 본문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충분한 주님과의 교제로 행로를 정한 바울은, 그 움직임에 지체가 없이 예루살렘으로 목적지를 정해 빠르게 움직인다.

 

특히,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하지도 않고 지나쳐 행선하기로 한 이유는 뭘까?

(1)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

(2) 될 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

.

 

유대의 전통적인 규례를 잘 지키므로 복음의 걸림돌이 죄지 않게 하고, 또한 이 절기에 이방교회와 예루살렘교회의 화합의 적기를 놓치지 않고자 하는 판단력과 열정이 있었다.

 

일에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일, 그것을 위해 절제하는 일.

 

그러면, 왜 바울은 긴급히 오순절이라는 시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예루살렘에 가려한 것일까?

- 그는 절기에 맞춰 헌금을 가져가려 했는데, 절기에는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붐비고 또 교회의 인종적 상합의 상징인 이 헌금의 목적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의 전통적 규례를 존중하는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책잡힐 만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3.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고별설교

 

하지만, 그렇다고 에베소를 무심히 지나는 것은 아니다.

촌각을 다투는 시간속에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에 사람들을 보내어 교회의 대표격인 장로들을 청하여 오게한다.

 

바울의 고별설교

 

(1) 과거회상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 모든 겸손

눈물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 어디서든 거리낌없이 가르친 것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하나님에 대한 회개(悔改),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증거한 것.

: 바울의 삶은 주장하는 잣[가 아니었다.

주님을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섬기며 성도들에게 거리낌없이 가르쳤다.

그가 전한 내용도 회개와 믿음의 균형을 이루었다.

 

 

(2) 현재각오, 미래의 계획

 

성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에 가는데 무슨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함.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함.

 

- 사명과 생명. 나는 무엇에 지배를 받는자인가?

주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자기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주님 말씀.

 

- 성령께서 바울을 사로잡아 예루살렘에 가게 하신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 성령의 포로가 되어, 성령의 강요에 따라...

바울이 가는 곳마다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고 일러주셨다.

고난의 길이라도 성령이 이끄시면 순종할 수 있는가?

이전에는 위협과 살기에 매여서 신자들을 잡으러 갔던 바울이

지금 성령의 매임을 받아 고난을 받으러가는 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매여 사는가?

 

성령은 각성에서 몇차례나 이일에 대해 말씀하시며 바울을 준비시켜주신다.

우리는 주님께서 몇차례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겪을 일들을 준비해주심에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없는가?

 

(3) 당부, 확인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못 볼 줄을 아노라.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으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 바울은 당당하게 가르쳤고, 후회 없이 사역했다.



 

마무리

 

3년간의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회고하는 바울, 그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는 중에도 장로들을 불러 밀레도에서 눈물의 고별설교를 하고 있다.

우리도 영원히 이 땅에 머무를 이는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도 떠나고 성도도 떠나야할 순간이 온다. 죽음으로든 아니면 여러 가지 일로 타지나 해외로...다른 교회를 가게 되든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섬기던 교회에서의 시간이 바울의 고백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제대로 한 번 살아보지 못했음을 두려워하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그 푯대를 향해 믿음의 경주를 후회없이 달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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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12

그에게 생명이 있다.

Wed 19th Aug 15

 

전문맥

19:21~31

 

스게와의 일곱아들이 예수님 이름을 빙자했다가 망신당한 사건으로 예수 이름의 권능이 나타난 계기가 된 에베소. 마술책 은 5만이 불태워지고 주의 말씀이 힘있어 흥황했다.

이 일로, 에베소에서 은장색들이 주도한 큰 소요가 있었다. 에베소지역에 나타난 말씀의 승리에 대한 사탄의 저항이자 발악이다. 마술행하던 자들이 대대적으로 회심하고 우상숭배중단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은장색의 대표격 데메드리오는 영업 손실과 아데미 여신의 위신 실추를 이유를 들며 동료들을 자극하고 선동한다. 그럴듯한 명목으로 치장하나 의 노예가 된 가련한 우상숭배자일뿐이다.

 

에베소사람들이 일의 자초지종도 모른 채 군중심리에 현혹되어 목청껏 소리질렀다. 하지만, 지혜로운 서기장의 중재로 집회가 해산되었다.

서기장은 시위를 주동한 사람들과 에베소 시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억울하게 위협받고 있는 신자들 편에서도 변호했다. 군중의 소요를 잠잠케 한 서기장은 사람들에게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합법적인 절차를 따라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청했다. 불법 집회가 에베소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그의 말에 설득된 군중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에베소에 일어난 소요로 바울의 동료들이 극장에 끌려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에베소의 법과 시 서기장을 개입시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언제든지 모든 상황을 다 동원하실 수 있다.

 

바울의 선교여행

 

에베소에서 아데미 소요사태후 바울의 행적은?

 

1)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하고 작별한 후 마게도냐로 갔다.

2) 마게도냐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을 권하고 헬라에 이름.

3) 헬라에 석달 있다가 배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함.

-> 머물든지 떠나든지 제자들을 권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며, 사역의 일꾼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본다.

바쁘고 피곤한 여정 중에도 제자들을 다시 방문하여 말씀으로 격려하는 일을 먼저 챙겼다. 사람을 세우고 제자를 키우는 일이 복음사역의 핵심이다.

 

바울이 헬라에서 수리아로 가고자 하는 계획이 변경된 이유

-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함.

: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고 계획을 수정한 바울, 때로는 죽기를 각오하고 정면으로 맞서야 하지만, 우리의 계획대로 열리지 않을 때 피해가고 돌아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바울과 함께하며 그를 기다리던 사람은 누구인가?

-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

-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 세 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

-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

: 귀한 동역자들이 그의 곁에 이었다. 복음의 길에 그들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 내게도 복음의 수고를 통해 얻은 동역자들이 있는가?

바울은 혼자 여행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동역자들과 더불어 복음의 비전을 함께 나누었다. 특히 그의 동역자는 그가 복음을 전해 얻은 전도의 열매들이었다.

 

바울의 설교와 유두고 사건

 

바울이 한 밤중까지 설교하게 된 이유는?

 

- 무교절 후 빌립보에서 떠나 닷세 안에 드로아에 가서 이레를 머물게 됨.

- 안식후 첫날에 떡을 떼려하여 모였을 때에,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강론하게 됨.

: 바울은 드로아를 떠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했다.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 안식후 첫날 떡을 떼려함

- 헬라 로마의 대부분 종교모임은 한달에 1회정도였다.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모였을 수 있으나(2:46), 그들은 특별히 한 주의 첫날에 모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24:1) 안식일에 있는 회당모임과 충돌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밤 중 바울의 설교중 일어난 사건은?

-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져 죽음.

유두고는 왜 창터에 걸터 앉았을까? 바울의 강론은 밤중까지 계속되고 윗다락에는 등불을 많이 켜서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등불을 많이 켰으니 자연스레 산소가 많이 소진되어 쉽게 졸음이 올 수 있었다.

유두고는 자꾸 졸리니까 창틀에 걸터 앉아서 신선한 공기를 맞음으로 졸음을 이겨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고 졸다가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 졸더라도 와서 기도하려는 자세 vs 지레 포기하고 불참하는 자세

- 당시 그리스도인 대부분 노예였던 것을 감안할 때 이 청년(‘아이로 번역된 헬라어가 이란 뜻도 있다.)은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 지쳐있지만, 왔을 것이다.

- 유두고는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하고 피곤했지만, 말씀듣기를 사모하여 늦은시간까지 졸음을 몰아가며 긴 설교를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말씀의 자리에 얼마나 사모함이 있는가?

 

바울은 이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며 그 결과는?

-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 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새기까지 이야기 하고 떠남.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를 적지 않게 받음.

-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 죽은 도르가를 살린 베드로,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린 바울.

주님의 역사는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능력이 있다.

우리를 통해서는 생명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 특히 안식 후 첫날, 성만찬이 있던 날 그가 살아난 것은 어떤 메시지 인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신자의 죽음과 부활을 보여준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죽은 유두고에게 임하여 생명을 주신 것.

 

 

마무리


황혼에서 새벽까지 제자들을 돕기위해 말씀을 강론하며 떡을 떼어먹는 바울, 그 바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다. 적대자도 동역자도... 우리 곁에 사람들을 보자.

복음안에서 깊이 교제하는 것을 통해 우리교회가 격려와 위로를 경험하게 하소서. 때로 위기가 결속감을 더욱 키우고, 주님의 일하심과 큰 위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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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8~20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Wed 12th Aug 15

 

20절에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주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8절에 보면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한 것을 본다.

 

이 회당은 어떤 회당인가? 전문맥을 살피면 에베소에서의 한 만남이 소개된다.

에베소에 아볼로라는 사람이 왔다.

에베소는 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도시고, 제국 전체에 가장 번창했고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지방 행정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다.

그곳에 안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는 사람이 온다. 알렉산드리아는 수리아 팔레스타인 밖에서는 로마제국 전체에 걸쳐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된 곳이다. 그곳에 있었던 유대교 철학자 Philo는 유대교와 헬라철학에 모두 정통했던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필로같은 대 철학자, 유대교 공동체의 영향문하의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 였다.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여 가르쳤던 자이다.

 

우리는 질문한다. 바울은 알겠는데? 아볼로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나님은 바나바나 바울같은 일꾼들을 사용하셨지만, 아볼로같은 전혀 새로운 일꾼도 준비해 두셨음을 본다.

고전 36절에 보면

바울사도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느나니라 한다.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이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함을 들었다.

그가 예수의 관한 것을 가르쳤다. 이에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일러준다.

 

사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상황을 보게 된다.

알렉산드리아 대학자 필로의 문하에서 배운 당대 최고의 지성인 아볼로

천막 만드는 브리스길라 부부의 말에 경청하는 놀라운 겸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가 은혜를 사모하는 모습이다.

 

이 아볼로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기는 아볼로.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에베소를 방문했던 바울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고 요한의 세례만 아는 제자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

 

이 에베소. 그곳의 회당의 이야기로 오늘 본문은 시작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석 달간의 바울의 강론.

사람들의 반응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두 무리를 본다.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는 무리와 따로 세움 받고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의 무리이다.

2년 동안이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그들이 제자로 세워진 것이다.



  (에베소 두란노 서원, 셀수스 도서관)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고 주의 말씀으로 제자를 양육하는 그때.

11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

 

말씀에는 관심 없고 희한한 능력에 관심 많은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에게 예수 이름으로말한다.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이런 사람들 중,

유대인 한 제사장 스게와의 7아들도 이 일을 행했다.

악귀의 대답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예수이름을 빙자해서 쓴다고 능력이 나타나겠는가? 영적존재인 마귀도 이미 그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당하던 시절까지 제사장을 지낸 명단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명단 속에 스게와란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가 제사장을 사칭한 것으로 보인다.

 

악귀 들린 사람이 그 2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며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했다.

 

복음의 능력있는 증인이 있고, 복음을 흉내 내는 자가 있다.

 

구약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나온다.

언약궤만 들고가면 이기는 줄 아는, 회개나 하나님의 임재보다 경건의 모양에 회칠한 무덤같은 자들이다.

 

삼상 4:1-11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어찌하여 블레셋 앞에 지게 하였는고?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내 편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을 한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하나님 때문에 전쟁 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약궤 자체를 가지고 가자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세요! 언약궤를 모시고도 아니고 가지고 가자고 하였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언약궤와 함께 있었다고 하였고 그룹 사이에 있는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로 다시 바꾸어 설명하고 있다.

 

모세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지킬 자격이 있었고 하나님의 현현을 맛볼 수 있었다.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거기에서 내가 너를 만나리라 언약궤는 하늘의 하나님이 이 땅에 머물러 계신 곳으로 속죄, 구원, 계시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었으나 이스라엘에게 이 언약궤는 전쟁의 수호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적처럼 여겼다. 언약궤의 의미를 몰랐다.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이것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들렸다.

예레미야 7:3-7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살게 하리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자기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을 참지 않으신다.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이르렀도다. 이스라엘의 환호성이 얼마나 컸던지 블레셋 사람들이 다 두려워 했지만 사실상 하나님이 능력에 떨고 있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언약궤가 아니라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로 인한 것이었다.

도리어 이스라엘은 부적처럼 여겼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거꾸로 되었다.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예수이름을 빙자한다고 귀신이 물러가겠는가?

예수이름의 권세도 알고 바울의 이름도 알지만 너는 도대체 누구냐?”

, 사단은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비야냥 거리고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니 우리가 항상 승리하리라 자만하기보다

내가 과연 하나님 편에 서서 그분의 통치와 인도를 받는자인지 참된 회개에 이르러야 한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 헬라인들이 이 일로 두려워하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이 많이 와서 자복하며, 마술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른다.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그 당시에 마술의 비법을 담은 파피루스는 감아서 작은 원통이나 부적을 넣어 목에 거는 금합에 담아놓았다. 이렇게 태운 마술사들의 책값이 무려 은화 5만개 상당인 것으로 보아 이는 노동자 한 명이 하루도 놀지 않고 한 푼도 쓰지 않고 139년을 일해야 얻을 수 있는 거액이다. 25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성경책이 있는 곳에 마술 책이 불태워지는 것을 본다.

 

빌립보서 3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 고백의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리고, 아볼로 물을 준 에베소. 바울이 다시 2년간 가르치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황 하여 세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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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1 ~ 11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Wed 5th Aug 15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떠난 바울,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테네에서 우상이 가득한 그 성을 보고 분노하여, ‘알지 못하는 신에게놓인 단을 보고서

천지의 주재신 하나님, 죽음과 부활의 그리스도를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분명히 전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결실이 적어 실망했을 수도 있다.

그런중에 온 고린도. 하나님은 바울은 위해 어떤 만남을 준비해 주셨을까?

 

 

 

 

 

 

1.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동역

 

한 부부였다. 바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이다.

이들은 글라우디오 황제 때,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를 떠나라할때에

이탈리아로부터 떠나왔다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난다.

그들이 장막만드는 업을 같이하므로 바울과 함께 거하여 일했다.

홀로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온 바울.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한 동역자를 붙혀주셨다.

본래 '아굴라'는 유대인으로 이름의 뜻은 '독수리'란 의미로
흑해 근처에 있는 '본도'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로마에가서 브리스가 집안의 노예신분으로
있다가 브리스길라와 결혼한것으로 추측됩니다.

'브리스길라'는 로마인으로 브리스가 명문 가문출신입니다.
 그녀 이름의 뜻은 '작은 노부인'으로, 이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빛'
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굴라는 노예신분이었지만 성품이 온화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순종하는 신뢰가 가는 인물이었으므로
나중에 주인에 의해서 자유인이 되었으며
후에 그 집안에 브리스길라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결혼전에 이미 개종하였고
이로인해 글라우디오 황제때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하여 고린도로 떠나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천막짓는 일을 하며 지내던 중,
 바울이 1차 고린도 방문 때 그들을 만나 그 집에 머물면서
장막 짓는 일을 도우며 하나님의 도를 사모하였던
그들 부부에게 복음에 진수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들려주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성령충만을 받은 두 사람은 바울의 동역자로
주께 헌신할것을 결심하고 18개월 후에
바울이 에베소로 떠나자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후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로마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 사역의 특징은 자신의 집을 열어 예배모임을 갖는
가정교회를 제일먼저 시작한 사역으로 고린도, 에베소, 로마 등
가는 곳마다 교회를 창립하였던 부부 사역자였습니다.

다시 로마에서 네로황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에베소로 돌아와 사역을 하였으며

브리스길라의 복음전파에 대한 특심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사도바울의 뒤를 이어나갔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목이 잘리어 순교하자 그들도 끝까지
 복음중거에 힘쓰고 사도바울과 마찬가지로
로마에서 목에 잘리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 동역할 사람을 붙혀주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본다.

옛날에 한 농부의 자녀들이 다투기를 잘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회초리 한 단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회초리 단을 자녀들에게 주면서 한 번 꺾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 중에서 그 회초리 단을 꺾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회초리 단을 풀어서 한 개비씩 나누어주고 꺾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그 회초리를 꺾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너희들이 서로 힘을 합하면 적에게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서로 싸우면 쉽게 적에게 패패하게 될 것이다."

 

전도자는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온 교회가 마음이 합하여 동역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이 확장되어 갈 것이다.

 

2. 대적의 훼방

 

이곳에서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권면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유대인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말씀에 붙잡힌 열정이 있는가?

 

우리 삶은 무엇이 붙잡고 있는가?

돈에 붙들린자 수전노가 되고, 지혜에 붙들린자 학자가 되며,

게임에 붙들린자 게임광 게임메니아가 된다.

우리가 그것을 붙잡고 있는 듯 하나 사실 그것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

담배를 붙잡는 자, 담배에 중독되어 붙들려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고 있는가?

말씀에 붙잡히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읇조리고 있는가?

1편 복있는 사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셨다.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입으로 악을 토하고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을 낸다고 주님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의 언어의 습관을 주의해서 살펴보자.

욕짓거리가 나온다면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일 것이다.

부드럽고 감사한 말이 나온다면 그 마음이 평안에 붙잡혀 있어서 일 것이다.

 

말씀에 붙잡혀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한 바울.

하지만,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였다.

바울은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복음은 구걸하지 않는다.

믿고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 것이다.

 

3. 영접한 사람들

 

이렇게 주의 말씀에 붙들린 바울이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

디도유스도는 로마의 시민이자 로마문화에 젖이었는 사람이었다.

당시 고리니도가 헬라적이면서 로마적인 것을 감안할 때 그는 철저히 로마사람이었다.

그는 줄리어서 가이사 시대에 자리잡은 로마의 한 가문 출신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의 첫 이름은 가이오였을 것이다.

16장 바울의 동역자 소개

16:23 나와 온 교회를 잘 돌보아주는 가이오도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고전 1: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다.

그리스보 또한 로마이름이다. 그리스보가 회당장이었다는 것은 그가 지위와 부를 갖춘 사람으로 회당의 여러 일에 책임을 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들을 귀 있는 자를 예비하사 구원받게 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본다.

우리로서는 누가 택함을 받은 자인지 알 수 없다.

물에 빠진 사람.

코란을 외우는 이슬람교도

알라가 저를 죽게 작정했다면, 아무도 구할 수 없으리.

알라가 살리려 한다면, 어떻게든 살겠지

 

성경을 외우는 기독교인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주께서 나를 통해 저 사람을 살리기로 예정했는지 어찌알겠느냐풍덩~

 

4. 주의 환상

 

바울이 그들 가운데 유하며 16개월 동안이나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본문에 소개되어 있다.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다수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지만 여전히 소망이 보이지 않던 그 때에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은 넘치는 소망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비전은 우리 모두에게 소망을 불러 일으키고 어두움의 인생터널 속에서도 밝은 빛을 보게 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의 인생이 된 헬러 켈러(1880-1968)는 셜리반이라는 선생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7살때 그녀를 만난 셜리반 선생은 말과 글과 인생의 참 의미를 그녀에게 깨우쳐 줍니다.

타임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100인의 인물에 그녀를 포함시킨 바있습니다.

셜리반 선생은 헬렌켈러에게 이 말을 되풀이 했다고 합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헬렌 켈러는 장애인들에게 이런 말로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태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빛을 갖는 일입니다. 힘과 용기를 가지세요.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비전, 그분의 영감, 그 음성을 붙들려 살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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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16~23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전문맥>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베뢰아에서는 박해가 없었고, 순수히 복음을 받아드렸다. 베뢰아인은 신사적이었다. 헬라어 원 단어로 고결한, 고상한뜻을 지닌다.

베뢰아의 준비된 마음 밭에 즐겁게 복음의 씨를 뿌리던 바울은 데살로니가로부터 원정 나온 유대인의 방해로 베뢰아로부터도 떠났다. 베뢰아 교인들은 바울을 아테네까지 전송해 주었고, 바울은 아테네에서 디모데와 실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디모데와 실라를 기다리며 아테네 성을 거닐던 바울. 일부러 아테네에서 적극적인 선교를 하려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람을 기다리며 쉬어가는 자리였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을 전하게 된다.

 

<본문>

 

 

 

 

1. 바울이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함이 일었기 때문이다.

우상이 가득한 것에 대한 분노. 우리에겐 그런 의분이 있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화롭게도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

우리시대는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분노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도 믿지 않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때 기드온 성경을 가지고 지우개따먹기처럼 하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이 심히 아팠다. 그래서, 학교에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이 복음을 듣게 만들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SFC 동아리 위원장하며, 신입생 들어온 온 반에 들어가 동아리 홍보를 하며 복음을 전했다. 추수감사절에 학생들이 돈을 모아 감사의 편지를 선생님들께 드렸다. 생물시간에 진화론문제로 생물선생님과 학생들 앞에서 논쟁을 벌인 일도 있다.

우리는 우상에 대해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않고, 복음전도의 필요도 느끼지 않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신들을 놓아두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 것처럼 말이다.

 

2. 바울의 복음과 변론 한 자들과 그들의 반응은?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 저자거리 시장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다. 토론하고 논쟁했다는 말이다.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이방신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

회당이든 시장에서든 유대인이든 헬라 철학자든 가리지 않고 만나 복음전하는 열정. 우리는 스스로 복음에 대해 받을 자와 받지 않을 자를 가리고 있지 않는가?

 

당시 대부분의 헬라인들은 사후세계 개념을 믿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헬라인들은 불멸의 영혼이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순수한 하늘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정신적 쾌락주의학파라 불리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영혼의 불멸을 부인했다. 영혼도 물질이며 몸과 함께 죽는다고 믿었다. 이들의 삶의 목적은 쾌락이었고 이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뇌가 없는 상태를 쾌락으로 보았다. 현세적 삶 지금여기의 만족에 집중했던 것이다.

 

못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말라. 다만, 지금 가진 것이 한때 바라기만 했던 것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상기하라’- 에피쿠로스.

 

단순한 육체적 쾌락주의자가 아니라 아탁락시아즉 마음의 동요가 없는 평온한 상태의 정신적 쾌락을 추구했다.

 

스토아학파는 에피쿠로스 학파와는 대치되어 있었다. 스토아 학파는 사후에도 영혼이 계속 살아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육신의 부활 몸의 부활까지는 믿지 않았다.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로마 제정시대 정치가로 세네카가 있다. 네로(Nero) 황제의 스승으로, 그리고 황제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어 네로에게 자살을 명령받은 일로 그의 이름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육체가 그 의무를 다했을 때 고통 받는 영혼을 육체로부터 구해내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예정된 시간까지 기다린다면 자칫 영혼을 구해낼 힘조차 잃어버릴 수도 있다. 노년이 나의 이성을 빼앗고 그것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다만 수족의 조그만 움직임만 남는다면 누구라도 힘없이 무너져 금세 부서져 버릴 것 같은 그 낡은 건물에서 당장 뛰쳐나오지 않겠는가. "-세네카

 

당대의 지성의 상징 아테네. 철학과 논쟁의 가장 핵심에 있었던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과도 말빨로 밀리지 않을 정도로 지성과 영성이 준비된 바울이었다.

복음은 지성을 넘어서는 초지성적인 것이지, 몰지성적인 것은 아니다. 덮어놓고 믿는 무식한 신앙 이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가야 한다.

 

 

3. 예수와 부활을 전하는 바울이 붙들려 간곳은?

 

 

 

 

 

 

아레오바고였다. 당시 아레오바고는 강의를 듣고 평가해서 승인하는 기관이었다. 바울이 공식적인 설교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수세기 전에 아레오바고로 붙들려왔다.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청중을 격분시켰고, 나중에 독배를 마시며 죽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이지 알고자 하노라

이들은 가장 새로된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 시간을 쓰지 아니하였다.

 

4. 아레오바고에서 전한 바울의 설교는?

 

 

 

 

아테네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알지 못하는 신 바울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역병이 돌았을 때, 어떤 제단도 신들의 노여움을 풀지 못했다. 아덴 사람들은 결국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단을 쌓았는데, 즉시 역병이 가라앉았다. 이 제단들이 바울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바울은 이것을 설교의 근거로 사용했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는, 만인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을 소개함.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여 있음.

 

에피메니데스 우리가 그를 힘입어 기동하며 있느니라.’

아라투스 너희 시민 중에도 어떤 사람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에베소서 2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희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신의 소생이 되었으니신을 금, ,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심. 공의를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심.

 

4. 설교에 대한 반응?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기롱하기도 하고,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게다 하는 이들도 있음.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은 헬라인들이 보기에 미련한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그 사람들에게 생명의 부활은 황당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다.

하지만, 몇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고,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 다마리아라 하는 여자. 또 다른 사람들이 믿는 자 중에 있음. 디오누시오의 회심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아레오바고 의회는 이 대학 공동체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을 보아 아레오바고 관원인 디오누시오가 복음을 믿게 된 것으로 앞으로 아테네지역에 복음이 심겨지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결론>

 

바울은 성공한 설교자인가 실패한 설교자인가?

이 설교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둘로 갈라진다. 우선 바울의 설교를 실패한 설교로 보는 시각이 있다. 결신자 숫자가 미미했다는 데 있다. 설교 후에 바울은 불과 몇 명만을 결신자를 얻었을 뿐이다. 베드로는 한 번 설교해서 3천 명, 5천 명을 한꺼번에 믿게 만들었는데 바울은 고작 서너 명밖에 믿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바울의 설교를 성공한 설교요, 더 나아가서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어 현대인에게도 의미 있는 뛰어난 설교라고 본다. 바울의 설교는 결신자 숫자와 상관없이 내용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성공한 설교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아테네 시민들이었으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교를 한 것이다. 그들의 존중하며 문화적 종교적 눈높이에 맞게 복음을 증거한 것이다.

 

종교심은 많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아테네 사람처럼. 우리나라도 종교적 열심히 있고, 또 종교적 분위기는 있지만, 복음에 부딪히지 못하고 우상처럼 하나님을 섬기기나, 우상을 섬기는 이 세대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지혜와 열정으로 진정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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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사람들은 감동에 목마르다.

메마른 시대. 각박하고 이기적인 사회,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다.

 

기업의 광고도 그렇다.

어떤 광고가 여러분의 눈물샘을 자극 했나요?
가장 인상 깊고 공감 가는 광고를 알려주세요.’ 이것이 기업 마케팅의 질문이다.

광고가 아닌 감동을 선사하는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강조된다.

 

이렇게 기업의 광고도 단순한 상품선전에서 감동적 기업이미지로 변신하고 있다.

 

타종교와 기독교의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절대 신이신 하나님의 자기 희생이다.

832절 자기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이

벧전 312절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심.

고전 5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함.

 

감동의 원천은 무엇인가?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받을 수 없다.

세상에 감동을 주지 못하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한국초대교회는 어떠했나?

꺼져가는 한국사회에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삼일운동감상담에 보노라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민족을 보우하시샤 우리 삼천리강산에 삼천만 동포가 금일 삼일운동기념식을 개최하게 된 것은 진실로 감사무지한 사실이일 소이다.’

하지만, 삼일운동이후 기독교의 수적성장과 더불어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줄어들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이다.

 

이십이절에서 이십사절 : 바울과 실라가 처한 상황

옷을 찢겨어 벗기운 상황이다. 추운 옥살이를 하고 있다.

많이 친 후라고 했는데, 사십에 하나감한 매를 맞았을 수 있다.

간수를 명하여 지키는데, 이는 소요를 일으키는 중죄인 취급을 하는 것이다.

깊은 옥에 가두었고, 그 발에 착고에 든든히 채워버렸다.

어찌하다 바울과 실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십구절에 보면, 종의 주인들이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고발했다.

귀신들려 점하는 여인을 귀신을 쫓아내어 해방케 한 그 일이

그 여인을 종삼은 주인들에게 이익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귀신에 시달림을 긍휼히 여긴 바울과 여자의 귀신들림을 이용하여 자기 주머니를 챙긴 사람들이 대조되어 나온다.

 

이것이 무슨 감옥에 잡힐 일인가?

하지만, 그들의 고소 목록이 이러하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소란케 하여 로마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이 무리의 송사로,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고,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한 것이다.

주님이 주신 환상. 마케도니아 사람이 고통 중에 와서, 우리를 도우라!” 외친 목소리를 듣고 건너온 첫 성. 빌립보, 그곳에서 주님 말씀 따라 고통당하는 귀신들린 여인의 귀신을 좇아 내었더니, 그 결과가 매 맞고, 옥에 갇힌 것이었다.

 

이십오절을 보면 이 상황속에서 바울과 실라가 하는 행동을 본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고 순종하여 복음전하다 이 꼬락서니가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깊은 옥에 갇혀 발을 착고에 채인 중 한 밤중에

기도소리가 울려나온다. 찬송소리가 나온다.

어떤 찬송.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

 

이 찬송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이 와중에 있었다.

다름아닌 함께 감옥에 갇힌 다른 죄수들이었다.

 

뿐만아니다. 이 찬송을 하나님이 들으셨다.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이었나?

이십육절을 보자.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겨졌다.

 

우리는 무엇무엇 때문에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맥추감사절 우린 어떤 감사를 드렸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송이 있다. 상황의 어떠함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주권을 믿기에 드리는 찬송이다.

하박국의 찬송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남나무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난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리

 

야고보사도는 야고보서 오장십삼절에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들이 있느냐 저는 찬송할 것이라.

바울과 실라는 고난 중에서 기도와 찬송을 다 드리고 있다.

 

천안에서 사역할 때,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학입학시험, 신학대학원입학시험. 어려운 중에 좋은 점수로 잘 합격하여 감사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누군가 질문을 했다.

전도사님, 그 때 시험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처럼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해 보니, 큰 시험에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 성도님께 그래도 하나님 은혜와 주권을 믿고 감사드리겠지요

그해, 강도사 고시가 있었다. 여섯 과목 중 한 과목의 과락으로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고 황당한 사건이었다.

신학대학원에서 장학금을 성적에서 5%안에 들어야 준다. 그만큼 장학금 사정이 짜고 열악하다. 대학시절에는 10%안에만 들어도 장학금이 있었다. 문교부인가 M.Div과정에 353명중 약 20등안에는 들어야 5%성적으로 성적장학금을 받게 된다.

그 장학금을 신대원에서 한번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두명 중 한명은 붙은 큰 확률의 강도사고시는 그냥 패스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엠알카드로 객관적 점수분류가 아닌 목사님 한분이 심사하는 설교시험에서 나를 낙제시킬 줄은 몰랐다. 여러분은 지금 강도사 고시 시험 설교과목에서 탈락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계신 것이다.

이제, 과연 황당하게 떨어진 시험결과를 붙잡고, 내 태도를 결정해야할 시간이 왔다. 마음이 쓰리고 아프고 집에 들어갈 면목도 없고 생각도 많았지만, 의도적으로 감사를 드렸다.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읊조렸다. 예배당에서 억지로라도 감사기도를 드렸다.

천안의 교회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이 사실을 이야기하기가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목사님이 하신 말

목사안수가 한해 정도 늦어지는 것이니 크게 염려하지 말게

 

강도사 재수 일년을 보내며 내 삶을 담금질하시고, 내공을 깊게 하시는 주님의 오묘한 섭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읽은책 땅콩박사 조지워싱턴 커버의 전기를 읽었다.

서문에 나를 올라온 높이로 재지말고, 헤쳐나온 깊이로 재어 주시오라는 말이 있었다.

내 삶을 더욱 여물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와 인도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해서, 부산중앙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의 사역자를 구하는 조건이 전임전도사였다. 신대원 막 졸업한 전도사를 구한다는 문구였다. 강도사인허를 받았다면 부산중앙교회에 원수를 내기가 머뭇거려졌을 것이다.

강도사 재수를 하고 목사안수를 남부산노회 남천동 성산교회서 받았는데, 십구명의 안수자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젊어 사진이 맨 끝에 실렸다.

젊은날. 내 삶을 연단하시고,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때임을 깨닫게하는 사건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이렇게 옥중에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간수는 옥문이 열려 죄수들이 도망하는 줄로 알고 검을 빼여 자결하려 했다.

베드로가 헤롯의 명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천사가 꺼내줌으로 간수들이 처형당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목숨으로 그 목숨을 맞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분명한 외침이 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는 무서워 떨며 부복한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때에, 그 질문앞에 그 유명한 말씀이 나온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그 간수와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다.

저희를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기고

그 권속이 다 세계를 받은후

자기 집에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또한, 날이새매 상관들이 바울의 일로 두려워 한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바울이 로마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 청한다.

바울이 처음부터 자기에게 이런 권한이 있다는 것을 말했다면

매맞고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는 권한을 함부로 쓰지 않고,

또 사장시키지도 않고,

적절히 사용하는 절제와 지혜를 본다.

 

빌립보의 관원들이 바울을 보며 어찌 두려워떨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우리성도는 복음의 감동이 되고 있는가?

복음의 장벽이 되고 있는가?

만일,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이 이 기회에 탈주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 빌립보에 생겨진 빌립보교회는 탈주범을 따르는 무리로 오해를 받았을 것이다.

 

참된 증인의 삶은 질문이 있는 삶이어야 한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너희속에 있는 소망에 대해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이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우리에게 소망을 구원을 묻는 자들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빌립보 감옥 유적)

 

입술의 증거와 함께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균형잡혀야 한다.

전도는 삶뿐만 아니라 말로도 증거되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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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성 바울의 개종>

 

서론

 

2007년 7월 24일,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인본주의적인 작업을 뒤로 하고 지성에서 영성의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이어령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던진 물음에 답하기 위해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의 시작품에서부터 세례를 받을 때까지의 일상을 수상형식으로 이 책을 기록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아. 증거가 없어.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는 최상의 종교도 아니야.”
 퉁명스러운 말투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던 17세 소년은 15년 후 같은 친구에게 전혀 다른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 즉, 실제로 있었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그리고 부활을 통해 그 존재를 보여주신 하나님이 곧 기독교다.”
 이 사람이 ‘20세기에 가장 사랑받고 널리 읽힌 ‘기독교 작가’인 C S 루이스다. 그는 ‘순전한 기독교’‘고통의 문제’‘스크루테이프의 편지’등의 책을 통해 기독인들이 고민해온 신학적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고통의 문제’ 등에서 그가 무신론과 허무주의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는 아무리 철저한 무신론자라도 입을 다물게 할 수준이다.

 

본론

 

  1.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함

 

  사울이 왜 죽음의 위협에까지 노출이 되었나?
  본문에서 사울은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여 밤낮으로 성문을 지킨다.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다 두려워하며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않는다.
  이 상황에 밤에 광주리에 담겨 성을 빠져나와야 할 만큼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배척당하는 입장에 놓였다.

  종교는 우리는 편안한 평지로 인도할지 모르지만,
  바른 신앙은 우리를 백척간두의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YWCA 탈북자 한국적응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경찰들이 사복을 입고 대거 와 있었다.
  당시 부산에서 탈북자가 자살한 사건이 있던 때였다.
  목숨걸고 북한을 나온 사람이
  남한땅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충격을 준 시점이었다.

  북한의 탈북자들이 목숨 걸고 남한으로 귀순했을 때,
  김정은에 대해서는 원수를 졌고,
  남한에서는 온전히 따뜻한 환영을 받지 못한 채
  하나원에 들어가, 사상검증을 받고, 경찰의 감시망아래서
  북한의 간첩이 아닌지 오해 받는 것과 같다.

  다메섹에서 예수쟁이를 핍박하러 가다가 만난 예수님.
빛 가운데 음성으로 들려진 음성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그 빛 아래서 눈의 빛을 잃고 시각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일로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자신이 핍박한 그 예수님이 바로 약속한 메시아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했던
  그 분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그를 파견한 유대인들에게 제거대상 1호가 되었다.
  그렇다고 흩어져간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환호하지 않고 경계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바나바가 등장한다.
  바나바는 27절에 보면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를 본 것과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사울이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했던 일을 소개한다.
  바나바는 권위의 아들,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다.
  그의 중재로 사울은 교회에 용납이 된다.
  우리 속에 관심을 가지고 세워주어야 할 무관심속에 혹은 편견 속에 있는 지체는 누구인가? 교회안에 바나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나바가 없었다면 사울도 없었다. 사울을 바울되게 이끌어준 권면자 권위자가 바나바였다. 새가족들에게 신앙의 경계선에 서 있는 자들에게 따뜻한 대변자로 나설 사람 누구인가?

 

  2.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함

 

  주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고’
  그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 힘쓴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회당에서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할 때, 스데반을 죽이고자 했던 장면이다.
  스데반이 죽었던 그 자리에 이제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예수의 증인으로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을 핍박하는 자일수록, 그가 자신의 목숨바쳐 복음을 파수꾼이 될 수 있다.
  전도해도 무관심한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람이 회심하면 C.S 루이스나, 이어령처럼 복음의 기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포기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3.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감

 

  형제들이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다소로 보낸다.
  사도행전 9:22절과, 본문 9:26절 사이에는 최소한 3년의 시간이 있다.
  아라비아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 후에, 사울은 다메섹으로 돌아갔고 그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갈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 바울 자신이 회심하기 이전에 체험한 사실을 이야기 함. >
갈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갈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갈1: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갈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갈1:18 그 후 삼 년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람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갈1: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갈1: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갈1: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갈1: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갈1: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갈1: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사도들은 과거의 이 박해자가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기를 꺼려했다. 사울은 가이사랴로 피하였고 거기서 배를 타고 다소로 돌아왔다.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는 사울의 고향이다(22:3) 이곳에서 여러 해를 머물렀다(갈1:21)
  사울은 여기서 바나바가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는 성령의 일하심을 따라, 자신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울을 본다.
  우리의 아라비아사막, 길리기아 다소는 어디인가? 낯선 광야, 혹은 익숙한 동네에 오랫동안의 시간을 보낸 사울,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스페인과 로마까지 복음으로 1,2,3,4차 여행까지 하게하시는 철저한 준비 과정이시다.
 
나를 지으신 주님 ( 내 이름 아시죠 )

1.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서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2.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때 그가 들으시죠

 

  기다림의 시간 때로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예수님을 뵈옵고 그 목소리도 듣고 분명한 증거를 얻었지만, 사울에게도 하나님의 때에 대한 기다림이 필요했다.
  우리는 얼마나 그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세례 요한을 낳았다
  사울도 이렇게 주님의 때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 인내는,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약 5:11  ‘우리가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복음의 가장 열정적인 반대파 사울, 그가 다메섹에서 회심하자. 교회에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평안함- 외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움/  든든히 서감- 자신의 위치를 공고함.
  성령의 도우심 받아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졌다.

 

결론

 

  우리는 교회의 어려움 속에서 교회가 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것을 본다. 우리 개인이나 교회에 당한 어려움이 무엇인가?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찬송의 가사를 묵상하자.


WRITTEN BY
로드비취
항해자에게는 나침판이 필요합니다. 또한 등대가 필요합니다. 북극성처럼 변치않고 우리 길을 인도할 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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