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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34~43 십자가의 그리스도

영혼의 창

by 로드비취 2010. 8. 2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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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34~43

마지막 한 영혼까지

Tue, 24th Aug 10

 

새벽설교 김광영 목사

■ 본문과 씨름하며

 

예수님께서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러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두 행악자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목박혔다. 예수님도 그렇게 행악자들 가운데 못 박히심으로 범죄자 중 하나로 여김을 받으셨다.

 

트로만 데이비스(Truman David)라는 미국 의사가 십자형에 대해 의학적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죄인의 손목에 박힌 못이 메디안신경에 압력을 가하면 큰 고통이 느껴진다. 몸이 늘어지면서 생기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몸을 위로 끌어당기면 몸무게는 못이 박힌 발로 이어지게 되고 타는 듯한 고통을 뼈 사이에서 느낀다. 팔이 피로해지고 근육에서 경련이 일어나면서 고통이 끊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련과 고통 때문에 숨을 쉴 수 있는 능력마저 잃는다. 공기는 폐로 주입되지만 숨을 내쉴 수는 없다. 따라서 약간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결국 이산화탄소가 폐와 혈관에 쌓이게 되고 경련을 약간 가라앉는다. 그러면 잠시 몸을 위로 끌어 당겨서 산소를 들이 마시고 내쉴수 있게된다.

그러나 고통의 시간이 지속되면 몸은 다시 경련을 일으키고 일시적인 질식 상태에 이른다.... 결국 근육 조직에서 너무나 많은 양의 액체가 빠져 나가게 되고, ....폐는 적은 양의 공기를 들이쉬기 위해 마지막으로 고통스럽게 움직이다. 죄인은 이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뼛속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는 죽음앞에 몸을 맡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이런 십자가의 비참하고 고통스런 죽음을 죽었음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십자가의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르침에 당시 로마인과 헬라의 사람들은 미친사람 취급을 하기도 했다.

“어찌 하나님이 그렇게 수치당하고 종이나 반역자들이 당하는 십자가 처형을 당할 수 있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것을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1. 그리스도의 기도와 십자가 밑의 군상(34-38)

 

오늘본문에도 여러 사람들의 반응이 나온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눈다.

희롱하며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찌어다.”고 조롱한다.

백성들은 서서 이 장면을 구경하며

관원들은 비웃는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예수님의 자신의 마지막 남은 그의 몸을 걸친 옷까지도 자신을 못박는 병정들에게 내어주셨다.

그리스도를 환호하며 ‘호산나’를 외치고 그를 왕 삼으려 했던 이들이 ‘바라바’의 구원을 외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기를 요청하며 이젠 구경꾼이 되어있다.

예수를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던 관원들은 비웃고 있다.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이렇게 매달았을까? 로마군병, 예수를 못박으라 외친 군중들, 시기와 모함을 한 백성의 관원들.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판 가룟유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아시는 그분이,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말씀을 살리시고, 열두영도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실 수 있는 그 분이 무지해서 함정에 빠지거나, 무능해서 헤어나오지 못하신 것일까?

이 십자가아래의 모든 것을 지켜 보시는 주님

우리는 그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를 보게 된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옶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 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신다. 자신의 십자가의 자리로 인도하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두가 죄에 이른 것 처럼 이제 둘째 아담이 되셔서 순종의 자리에 서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다.

그분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 저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신다. 그분은 죄없이 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가 하였음이라.

 

 

2. 한 행악자와 또 다른 행악자(39-41)

 

십자가아래의 군상들의 외침에 한편의 강도가 거든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이 때 다른 편 강도가 그 강도를 꾸짖으며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음으로 당연하지만, 이 사람의 행한 것을 옳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이 자기 죄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힘을 알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께서 의인이심에도 못박히신 것을 알고 있었다.

3.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2-43)

 

그는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간구한다. 주님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선언하신다.

 

벧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는 어떤가? 예수님을 비방하는 무리속에 있지는 아니한가?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이 군종속에 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그 무지한 죄까지 다 용서하신다. 그분의 사랑의 우리의 모든 죄보다 더 크시다.

 

오늘 새벽 이 십자가앞에 서서 묵상하자.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줄 알고 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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