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무엇이 있느냐?
마15:29-39
Tue, 5th May 09
▶ Message
1. 고치시는 주님 (He healed them) v 29-3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셨다.
거기는 두로와 시돈, 데가볼리 등 이방지역이었다.
이젠, 예수님의 주 무대인 갈릴리 호숫가로 돌아오셨다. 이방인들 중에 많은 이들이 함께 이 자리에 왔을 가능성이 많다.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나왔다.
그 무리는 30절에 보니, 저는 사람, 장애인, 맹인, 말못하는 사람, 그런 부류의 기타 여러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사역은 그런 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눅 4:16-19을 보라.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처음 찾아 읽으신 책이 이사야 61:1이하의 말씀이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과연 주님은 사람들이 데려온 그 사람들이 자신의 발 앞에 앉자. 그들을 고쳐주셨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는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한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2. 축사하시는 주님 (He had given thank) v 32-39
예수님은 이 무리들을 보시며, 제자들을 부르셨다.
32절 -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주님은 그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
환자들과 장애인을 고쳐주신 주님은, 예수님과 함께한 배고픈 무리들의 배고픔도 보신 것이다.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반문한다.
너희에게 있는 떡이 몇개 있느냐고 물으신 주님 떡 일곱 개 생선 두어마리를 받아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7광주리에 차게 거두었다.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4천명이었다.
앞장 마14:13~21에 이미 오병이어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표현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건인가?
다른 사건이다. 그렇다면 왜 유사한 사건이 2차례에 걸쳐 기록된 것일까?
오병이어 사건은 유대인들이 그 주대상 이었고,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 잔치로서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반면, 칠병이어 사건은 이방 가까운 지역에서 이방인들을 주 대상으로 행해진 것이 분명하다.
주님의 복음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열려있는 잔치임을 보여준 것이다.
또, 우리의 질문은 얼마 전에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너무 의아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아마,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께서 24절 -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보냄을 받았다 -는 말씀을 너무 엄격히 받아 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가나안 여인의 귀신들린 딸을 말씀으로 고치셨고, 예수님을 이방으로부터 따라온 장애인들과 환자들을 고치셨다. 그리고, 그들의 배고픔을 채우신다.
후 문맥을 보면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께 꾸지람을 듣게된다.
마 16:9~10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는 오천 명을 먹인 빵 다섯개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또한 사천명을 먹인 빵 일곱개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 Point
우리는 제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에 이렇게 어리석을 때가 많다. 우리의 제한된 사고로 주님을 제한하는 우를 범치 않도록하자.
주님은 주님을 찾아오는 누구나 영접하시고, 안아주신다. 우리는 편견과 아집으로 배척하는 경우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