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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난 지팡이 (민수기 17:1-8) 김광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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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비취 2010. 8. 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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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7:1-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3]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4]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6]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매 그들의 지휘관들이 각 지파대로 지팡이 하나씩을

그에게 주었으니 그 지팡이가 모두 열둘이라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

[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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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작은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어린 묘목가지에 불과했지만 과수원 주인은 흙을 손질해 주고 물을 충분히 뿌려 잘 보살폈다. 작은 살구나무는 장애물들을 극복하셔 쑥쑥 자랐다.

작은 살구나무는 ‘주인을 위해 이 과수원에서 가장 좋은 나무가 되고, 가장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야’ 다짐했다. 실패에 대한 생각은 아예없고 오로지 최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과수원 주인이 다가왔다. 보통 때면 주위에 물을 주고 흙을 살펴 보았을텐데 그 날은 달랐다. 어린 나무 줄기를 움켜 잡더니만 묘목을 단단히 감싸쥐고서 순식간에 도끼를 집어들고 나무 밑중을 홱 잘라 버렸다.

작은 살구나무는 기겁을 했다.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늘 관심 가지고 돌봐주는 것 같은 그 사람이 자양분의 원천으로부터 나무를 완전히 가라 놓았다. 이제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하는가?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단 말인가?

주인은 가지를 꼼꼼하게 하나하나 휘더니만 가지들을 잘라내 버렸다. 나무의 가지와 잎이 잘려나가게 될 때 까지 그 잔인한 작업은 계속되었다. 싱싱하고 아름답던 나무가 땔감으로 던져지기 위한 통나무처럼 되고 말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가장 좋은 살구나무가 되는 것이야. 그런데 이젠 나에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구나. 이제 버려진 저 가지들과 함께 불속에 들어가는 걸까?‘

과수원주인은 살구나무 줄기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기 시작한다. 나무껍질은 나무를 보호하는 유일하고도 마지막 남은 부분이다. 하지만, 주인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작은 나무는 벌거벗은채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껍질이 다 벗겨진 살구나무 묘목은 뜨거운 태양아래 놓여졌다. 태양은 살구나무에서 수분을 앗아간다. 습기가 다 제거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주인은 말한다. ‘좋아, 이젠 준비가 다 된 것 같군’

주인은 바싹 마른 묘목을 들고 그 튼튼한 막대기에 몸을 의지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살구나무가 아니야, 나는 지팡이, 막대기라고, 이것이 바로 주인이 원했던 거야. 주인의 무게를 떠받치고 주인을 위해 그 옆에 있는 지팡이’ 살구나무는 외친다.

살구나무는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달라 보이는 새로운 역할 주인에게 위로가 되는 지팡이로서의 역할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노골적인 불평들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최고 지도자들의 모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살구나무 지팡이 주인도 그 모임에 소환되었다. 최고 지도자가 굳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알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갑자기 열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셨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그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별안간 모든 것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그때, 그의 주인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단단하게 마른나무에 둥근 홈을 파서 깊은 상처를 내었다. 주인이 지팡이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이다.

마침내 열두 사람 모두 손에 지팡이를 들고 둥글게 모이자, 주인은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장막 한가운데로 자신의 살구나무 지팡이를 내던졌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던졌다.

최고 지도자인 노인은 다른 모든 지팡이들과 함께 살구나무 지팡이를 집어들고 어두운 방으로 가서 두꺼운 융단을 걷어내고 스랍들이 수놓인 휘장 사이로 두손을 밀어 넣고 12개의 지팡이를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집어 던지고 나가버렸다.

완전히 버림 받은채 모든 꿈이 깨어지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살구나무는 어둠속에서 절망했다.

‘가장 좋은 살구나무가 되는 것이 내가 바란 전부였어, 그렇게 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가장 좋은 지팡이가 되는 것만을 바랬어, 그런데 이젠 우리는 완전 잊혀지고 없어질 존재가 되었어’

 

살구나무의 삶은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끝나는 것 처럼보인다.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발가벗겨진 채 모든 공격에 아무 힘없이 노출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어떤 것인지 느껴본적이 있는가?

결혼생활에서, 혹은 회사의 구조조정에서, 또는 의사와의 면담에서, 혹은 부당한 법적 판결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런 경험을 해 보았는가?

살구나무 지팡이의 꿈은 내동댕이쳐졌고 영원히 좌절된것 처럼보인다. 그는 자신의 때가 이르기도 전혀 무참히 잘려졌고 전혀 다른 목적에 사용되었다.

 

당신이 이렇게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큰 의문이다. 구명보트에서 물이 샐 때, 공중에서 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때, 마지막 청구서를 지불하기 전에 동전 한 닢도 남지 않고 다 떨어졌을 때, 마지막 희망이 마지막 기차와 함께 떠나 버렸을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아주 중대한 문제이다. 만일 하나님이 잠들어 계시다면 우리는 얼간이가 될 것이고, 만일 그분이 웃고 계시다면, 우리는 난감해 질 것이다. 만일 그분이 팔짱을 끼고 머리를 흔들고 계시다면 그리고 일손을 놓고 계신다면 우리는 패망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살구나무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 한다. 휘장 뒤에 서 있다고 해서 오페라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연이 끝난 관중들의 박수 갈채로 배우를 막앞으로 불러 낼 때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른 막대기에 불과한 살구나무 지팡이가 세포들을 통해 흐르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게 되었다. 지팡이로 수분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일이..? 살구나무의 뿌리는 이미 없어졌고, 껍질도 다 벗겨진 채 바싹 말아있다. 오랫동안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어있다. 뿐만 아니다. 마르고 오그라들었던 세포들이 있었던 자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옆구리 부분에서 움이 터 자라고 있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반대쪽 표면에서도 싹이 움터오고, 가장 먼저 피어난 싹에서 꽃이 피기시작한다. 어둠속에 빛이 없이 뿌리없이 버려진 살구나무 지팡이에서 말이다.

 

살구나무가 버림받은 기분으로 가장 낙담한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일이 일어난다.

 

[4]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7]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증거의 장막 지성소안 증거궤 앞에서 살구나무는 생명을 맛보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살구나무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계획은 종종 내 꿈들이 죽어가는 바로 그 순간에서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보낸 하룻밤이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람이 되는 과정을 가속화 할 수 있다.”

 

살구나무에게는 남은게 하나도 없는 것 처럼 보였다. 뿌리와 잎과 가지, 껍질도 다 잘렸고, 빛과 흙으로부터도 분리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 두어졌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를 자라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바로 그 환경들을 원망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만 대면해야 할때, 세상의 어떤 다른 것에 희망을 걸 수 없을때, 찬송가로 표현하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가리까?’ 고백할 수 밖에 없을때가 있다.

 

우리가 이런 환경에서 하나님을 기다린다면 어두운 곳에 고립 된 채 놓여있을 때에라도 새 힘을 얻게 된다.

 

(사 40:28-31)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싹이 난 그 작은 지팡이가 사람들에게 보여 졌다. 하나님께 불평하는 사람들 의심하는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증거로 그 작은 살구나무는 언약궤 안에 간직하도록 모세에게 지시되어진다.

 

아론의 지팡이에 왜 살구꽃이 피었을까?

 

민수기 17장의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대한 이 사건은 민수기 16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름아닌 레위 지파인 고라를 중심으로 대제사장 아론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하나님 세우신 권위가 무시되고 인간적인 판단과 사고로 신앙이 도전받는 자리에서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각 지파별 지팡이 열둘을 취하게 하시고 그 지팡이를 지성소의 법궤앞에 두게 하셨다. 다음날 아침 아론의 지팡이에만 살구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왜 하필 지팡이인가? 지팡이는 목자들이 양떼를 인도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었다. 장로나 족장의 손에 이 지팡이가 들려졌다면 그것은 권위를 상징한다.

각 지팡이에 열두 지파 지도자들의 이름을 쓰고 그것을 회막 앞에 둠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누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지도자인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속적은 불신앙과 불평은 한 가지 표적을 통해서 응답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더 이상의 논증은 허용되지 않는다. 열두 지팡이는 열두 지파를 의미한다. 열두 지팡이에 지도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바로 하나님의 임재인 증거궤 앞에 놓았다. 그런데, 아론의 지팡이에 싹과 꽃과 아몬드를 피워내면서 갑자기 생명이 분출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뿐 아니라 생명의 풍요를 표현한다.

 

우리말 살구로 번역된 식물은 아몬드이다. 아몬드는 히브리어로 ‘샤케드’이다. 이는 ‘흔들어 깨운다’는 뜻이다. 아몬드는 왜 흔들어 깨운다는 의미를 갖게된 것일까?

이스라엘은 건기와 우기 두 계절밖에 없다. 봄과 가을이 있으나 여름과 겨울이 교차하는 한 달 정도의 환절기를 말하는 것이다.

매섭게 추운 1월말과 2월초 아몬드 꽃이 따뜻한 갈릴리 지역을 시작으로 핀다. 아몬드꽃은 한국에서 보는 벚꽃과 비슷해서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한국 성지순례객들은 벚꽃이라 우기기도 한단다. 긴 겨울잠을 깨우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아몬드는 그 이름 처럼 ‘흔들어 깨우는’ 이미지를 가진 것이다.

 

대제사장 아론의 지팡이는 아몬드 살구나무 가지로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핀다.

대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인가? 자신이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함은 물론, 영적으로 잠든 백성도 흔들어 깨워야 한다. 하나님은 대제사장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고 일어난 고라 일당의 반역을 마루리하려고 아론의 지팡이에만 아몬드 꽃 살구 꽃을 피게하신 것이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있다. 그를 눈물의 선지자로 부르는 것은 남유다의 마지막 부흥기 요시야 왕 때부터 활동해서 요시야의 죽음과 함께 멸망으로 치닫는 유다 말기 혼란기를 겪으면서 회개하지 않는 지도자와 백성을 보며 눈물을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요시야 시대 이미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의 환상을 보여주셨다. 앞으로 닥칠 멸망과 바벨론 포로기의 칠흑같은 어둠을 이겨내도록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일종의 예방주소를 놓아주신 것이다.

 

(렘 1:11-12)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왜 굳이 환상 가운데 아몬드 나무 살구나무 가지를 보이신 것일까? 긴 겨울 동안 자지 않고 부지런히 깨어 있는 나무. 이스라엘에 추운 겨울이 지나고 희망의 봄이 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리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포로기의 긴 겨울이 아무리 매섭게 휘몰아쳐도 살구나무가 겨울동안 자지 않고 봄을 알리는 파수꾼이되듯 하나님이 결국 겨울의 끝에 희망의 봄을 주시리라는 약속이다.

 

이렇게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희망과 각성의 상징인 살구나무꽃을 피웠을 뿐만 아니라, 지성소의 언약궤에 담겨지게 된다.

(히 9: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의 기록처럼 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이어지는 세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존이 되며 하나님의 임재과 능력의 상징이 된다.

 

시편 116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1-6절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나이다“

 

시인은 116편의 11절의 내용처럼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그는 사람들의 속임수에 속았던 사람이다. 또한 6절에서처럼 ‘순진한 자’로 개인적인 분별력의 부족에 의해 치명적인 위협의 상황이 초래되었다.

시인은 이러한 고통의 상황에서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는 확신 있게 고백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꺼져가는 심지도 꺼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제 그 하나님의 전에 오늘밤 우리가 여기 있다. 우리가 왜 기도하는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우리가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마지막 소망으로 진실로 고백하며 부르짖을 때 주님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회복을 약속하셨다.

마지막으로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사 55:6-13)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