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도행전 14장 루스드라에서의 바울

영혼의 양식

by 로드비취 2015. 7. 2. 16:09

본문

 

 

 

 

 

 

 

사도행전 1419-28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Wed 8th Jul 15

 

 

 

1. 돌로 내침을 당한 바울

 

안디옥,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무리를 데려와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끌어내쳤다.

이것이 루스드라에서 당한 바울의 일이었다.

딤후 3:11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환란에서 건지셨느니라.

 

이고니온은 어떤 곳인가?

제국내의 도시문화는 획일적인 헬라-로마적이었던 반면, 전원지방은 지역의 언어와 풍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고니온 같은 은 이 두가지를 다가지고 있었다. 이고니온의 이방인 경배했던 신들중 두드러진 것은 브루기아의 모신(母神) Cybele였고, 신비종교도 퍼져있었다.

이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 두 가지 반응을 본다.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함.

-> 복음은 믿든지 배격하든지 결단이 요구된다.

 

사도들은 오래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한다.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게 하신다.

시도들이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니. 그 성내에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자와 두 사도를 좇는자로 두 패가 나뉜다.

이방인, 유대인, 그 관원들은 사도들을 능욕하며 돌로치려 한다.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옮겼다.

-> 닫힌 문앞에서 순교를 기다리기 보다. 열린 문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기를 선택했다.

예수님도 70인 전도대를 파송할 때, 너희를 영접하거든 그곳에 머물고, 배척하거든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떠나라고 했다. 복음에 순종치 않은 도시는 천국에서 그 먼지처럼 떨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달한 루스드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루스드라는 어떤 곳인가?

로마의 식민지로 이 도시 사람들은 로마 시민과 똑같은 권리를 누렸다. 몇몇 철학자는 강단에서 강연을 하거나 부요한 이교도 후견인을 위해 일했지만, 대부분 길거리나 시장에서 자신의 철학적 소신을 전파했다. 고대의 철학자들처럼 바울은 회당이 아닌 길거리에서 설교했다.

이곳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 나면서 앉은 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경청하는 것을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그에게서 보고 큰 소리로 말한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 사람이 뛰어 걷는다.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 앞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구원의 역사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있다.

9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

혈루증든 여인의 믿음, 여리고의 소경의 믿음.

닫힌 마음에 역사하지 않으신다.

예수님도 고향마을에서 아무런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저희가 믿지 않기에...

수도관의 잠긴 꼭지로 인해 수돗물이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역대하 16:9 ‘주께서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을 향하여 능력을 베푸신다

 

무리가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친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브루기아 지방의 전설에 쓰스와 허메가 고대에 그 도시를 방문했는데, 오직 한 부부 바우시스와 빌레몬만이 그 신들을 정중히 영접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홍수로 멸망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들은 고대에 브루기아가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하려고 한다.

바나바는 제우스,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려든다.

두 사도의 반응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함이라.

하나님이 지난 시대에서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을 만족케 하셨느니라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말렸다.

 

바울과 바나바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사람들은 인간에게 영광돌리기를 좋아한다.

성전미문에 앉은뱅이를 걷게 한 베드로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주사..

예수의 이름으로 빙장하여 영광을 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교회봉사에 많은 결실이 있을 때 그때가 위험한다.

세례요한처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렇게 능력을 행하고, 신격화될 시기에 복음을 전하며 헛된 일을 말린 바나바와 바울.

하지만, 이런 놀라운 사건이후에 유대인들이 돌로 쳐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내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까 그 무리들이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 왜일까? 장례를 치루기 위해서다. 그런데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간다... 아직 사명이 있기에 주님은 바울을 데려가지 않으셨다.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에 돌아간다.

 

복음의 원수들의 손에서 복음 전도자의 생명을 건져주셨다. 바울은 돌 세례를 맞고 거의 죽은 자 되었다. 하지만, 고후 4:9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도록그를 붙잡아 주셨다.

생명을 아끼지 않는 이러한 복음전도에 많은 사람이 제자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 돌에 맞아 완전히 죽은 자처럼 되었던 사람. 다시 일어나 다른 곳도 아니고 다시 성으로 들어간 이 사건이 복음의 생명력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에게 복음은 과연 어떤 것인가? 고난으로 인해 넘어지는 것이라면 과연 복음의 능력에 동참한다고 할 수 있는가?

찬양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가지려 했던 세상일들. 이제 모두다 해로여기며 주님을 위해 다 버리네.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주님을 앎이라.. 부활의 능력 체험하면서 그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의 죽으심 본을 받아서 그의 생명에 참여하네.

 

2. 선교지를 돌아보고 권면하는 바울

 

바울이 돌더미에서 일어나 핍박지로 돌아가 전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한다.

고난에도 주춤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더욱 돌진하는 그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 실전을 치룬 군인이 훈련병을 가르치는 것처럼 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바울이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로 인해 당하는 고난이 있는가? 신앙의 어떤 무용담을 후배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 기도하다 목이 쉬다.

진화론에 맞서 창조론을 증거하다.

나이트클럽분위기를 기도실로 바꾸다.

노숙인들에게 만찬을 배풀다.

장애인들에게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다.

 

3. 안디옥에 돌아온 바울

 

자신을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 바울은 그 곳으로 귀환하여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한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다.

 

결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사 행하신 일들의 간증이 얼마나 있는가? 우리 성도들의 모임이 세상자랑거리로 시기 질투가 아닌,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로 감사와 찬양의 모임 되게 하소서.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