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8장 1 ~ 11절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Wed 5th Aug 15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떠난 바울,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테네에서 우상이 가득한 그 성을 보고 분노하여, ‘알지 못하는 신에게’ 놓인 단을 보고서
천지의 주재신 하나님, 죽음과 부활의 그리스도를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분명히 전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결실이 적어 실망했을 수도 있다.
그런중에 온 고린도. 하나님은 바울은 위해 어떤 만남을 준비해 주셨을까?
1.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동역
한 부부였다. 바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이다.
이들은 글라우디오 황제 때,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를 떠나라’ 할때에
이탈리아로부터 떠나왔다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난다.
그들이 장막만드는 업을 같이하므로 바울과 함께 거하여 일했다.
홀로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온 바울.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한 동역자를 붙혀주셨다.
본래 '아굴라'는 유대인으로 이름의 뜻은 '독수리'란 의미로
흑해 근처에 있는 '본도'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로마에가서 브리스가 집안의 노예신분으로
있다가 브리스길라와 결혼한것으로 추측됩니다.
'브리스길라'는 로마인으로 브리스가 명문 가문출신입니다.
그녀 이름의 뜻은 '작은 노부인'으로, 이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빛'
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굴라는 노예신분이었지만 성품이 온화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순종하는 신뢰가 가는 인물이었으므로
나중에 주인에 의해서 자유인이 되었으며
후에 그 집안에 브리스길라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결혼전에 이미 개종하였고
이로인해 글라우디오 황제때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하여 고린도로 떠나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천막짓는 일을 하며 지내던 중,
바울이 1차 고린도 방문 때 그들을 만나 그 집에 머물면서
장막 짓는 일을 도우며 하나님의 도를 사모하였던
그들 부부에게 복음에 진수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들려주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성령충만을 받은 두 사람은 바울의 동역자로
주께 헌신할것을 결심하고 18개월 후에
바울이 에베소로 떠나자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후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로마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 사역의 특징은 자신의 집을 열어 예배모임을 갖는
가정교회를 제일먼저 시작한 사역으로 고린도, 에베소, 로마 등
가는 곳마다 교회를 창립하였던 부부 사역자였습니다.
다시 로마에서 네로황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에베소로 돌아와 사역을 하였으며
브리스길라의 복음전파에 대한 특심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사도바울의 뒤를 이어나갔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목이 잘리어 순교하자 그들도 끝까지
복음중거에 힘쓰고 사도바울과 마찬가지로
로마에서 목에 잘리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 동역할 사람을 붙혀주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본다.
옛날에 한 농부의 자녀들이 다투기를 잘했습니다.
자녀들에게 회초리 한 단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회초리 단을 자녀들에게 주면서 한 번 꺾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 중에서 그 회초리 단을 꺾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회초리 단을 풀어서 한 개비씩 나누어주고 꺾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그 회초리를 꺾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너희들이 서로 힘을 합하면 적에게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서로 싸우면 쉽게 적에게 패패하게 될 것이다."
전도자는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온 교회가 마음이 합하여 동역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이 확장되어 갈 것이다.
2. 대적의 훼방
이곳에서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권면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말씀에 붙잡힌 열정이 있는가?
우리 삶은 무엇이 붙잡고 있는가?
돈에 붙들린자 수전노가 되고, 지혜에 붙들린자 학자가 되며,
게임에 붙들린자 게임광 게임메니아가 된다.
우리가 그것을 붙잡고 있는 듯 하나 사실 그것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
담배를 붙잡는 자, 담배에 중독되어 붙들려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고 있는가?
말씀에 붙잡히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읇조리고 있는가?
시 1편 복있는 사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셨다.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입으로 악을 토하고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을 낸다고 주님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의 언어의 습관을 주의해서 살펴보자.
욕짓거리가 나온다면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일 것이다.
부드럽고 감사한 말이 나온다면 그 마음이 평안에 붙잡혀 있어서 일 것이다.
말씀에 붙잡혀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한 바울.
하지만,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였다.
바울은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복음은 구걸하지 않는다.
믿고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 것이다.
3. 영접한 사람들
이렇게 주의 말씀에 붙들린 바울이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
디도유스도는 로마의 시민이자 로마문화에 젖이었는 사람이었다.
당시 고리니도가 헬라적이면서 로마적인 것을 감안할 때 그는 철저히 로마사람이었다.
그는 줄리어서 가이사 시대에 자리잡은 로마의 한 가문 출신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의 첫 이름은 가이오였을 것이다.
롬 16장 바울의 동역자 소개
16:23 나와 온 교회를 잘 돌보아주는 가이오도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고전 1: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다.
그리스보 또한 로마이름이다. 그리스보가 회당장이었다는 것은 그가 지위와 부를 갖춘 사람으로 회당의 여러 일에 책임을 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들을 귀 있는 자를 예비하사 구원받게 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본다.
우리로서는 누가 택함을 받은 자인지 알 수 없다.
물에 빠진 사람.
코란을 외우는 이슬람교도
‘알라가 저를 죽게 작정했다면, 아무도 구할 수 없으리.
알라가 살리려 한다면, 어떻게든 살겠지‘
성경을 외우는 기독교인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주께서 나를 통해 저 사람을 살리기로 예정했는지 어찌알겠느냐’ 풍덩~
4. 주의 환상
바울이 그들 가운데 유하며 1년 6개월 동안이나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본문에 소개되어 있다.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다수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지만 여전히 소망이 보이지 않던 그 때에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은 넘치는 소망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비전은 우리 모두에게 소망을 불러 일으키고 어두움의 인생터널 속에서도 밝은 빛을 보게 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의 인생이 된 헬러 켈러(1880-1968)는 셜리반이라는 선생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7살때 그녀를 만난 셜리반 선생은 말과 글과 인생의 참 의미를 그녀에게 깨우쳐 줍니다.
타임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100인의 인물에 그녀를 포함시킨 바있습니다.
셜리반 선생은 헬렌켈러에게 이 말을 되풀이 했다고 합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헬렌 켈러는 장애인들에게 이런 말로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태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빛을 갖는 일입니다. 힘과 용기를 가지세요.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비전, 그분의 영감, 그 음성을 붙들려 살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