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13~27절
성령이 내게 증거하여
바울의 행보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 행선하게 되었는데 이는 바울이 도보로 가고자 선교일행을 이렇게 정하여준 것이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일행을 먼저 보내고 해안도로를 따라 앗소까지 약32km를 혼자 도보로 여행한다. 그리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짐하여 깊은 교제를 주님과 나눈다.
우리에게 이런 고독의 시간이 있는가?
어떤 일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독하게 서야하는 시간이 있다.
2. 급히 예루살렘 길에 오른 바울
앗소에서 만나 배에 바울이 합류한다.
앗소-미둘레네-기오-사모-밀레도
이틑날, 이틑날, 다음날이라는 말로 얼마나 신속히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완급이 조절되는 대조적인 본문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충분한 주님과의 교제로 행로를 정한 바울은, 그 움직임에 지체가 없이 예루살렘으로 목적지를 정해 빠르게 움직인다.
특히,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하지도 않고 지나쳐 행선하기로 한 이유는 뭘까?
(1)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
(2) 될 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
.
유대의 전통적인 규례를 잘 지키므로 복음의 걸림돌이 죄지 않게 하고, 또한 이 절기에 이방교회와 예루살렘교회의 화합의 적기를 놓치지 않고자 하는 판단력과 열정이 있었다.
일에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일, 그것을 위해 절제하는 일.
그러면, 왜 바울은 긴급히 오순절이라는 시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예루살렘에 가려한 것일까?
- 그는 절기에 맞춰 헌금을 가져가려 했는데, 절기에는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붐비고 또 교회의 인종적 상합의 상징인 이 헌금의 목적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의 전통적 규례를 존중하는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책잡힐 만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3.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고별설교
하지만, 그렇다고 에베소를 무심히 지나는 것은 아니다.
촌각을 다투는 시간속에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에 사람들을 보내어 교회의 대표격인 장로들을 청하여 오게한다.
바울의 고별설교
(1) 과거회상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 모든 겸손
눈물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 어디서든 거리낌없이 가르친 것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하나님에 대한 회개(悔改)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
: 바울의 삶은 주장하는 잣[가 아니었다.
주님을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섬기며 성도들에게 거리낌없이 가르쳤다.
그가 전한 내용도 회개와 믿음의 균형을 이루었다.
(2) 현재각오, 미래의 계획
성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에 가는데 무슨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함.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함.
- 사명과 생명. 나는 무엇에 지배를 받는자인가?
주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자기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주님 말씀.
- 성령께서 바울을 사로잡아 예루살렘에 가게 하신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 성령의 포로가 되어, 성령의 강요에 따라...
바울이 가는 곳마다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고 일러주셨다.
고난의 길이라도 성령이 이끄시면 순종할 수 있는가?
이전에는 위협과 살기에 매여서 신자들을 잡으러 갔던 바울이
지금 성령의 매임을 받아 고난을 받으러가는 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매여 사는가?
성령은 각성에서 몇차례나 이일에 대해 말씀하시며 바울을 준비시켜주신다.
우리는 주님께서 몇차례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겪을 일들을 준비해주심에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없는가?
(3) 당부, 확인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못 볼 줄을 아노라.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으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 바울은 당당하게 가르쳤고, 후회 없이 사역했다.
마무리
3년간의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회고하는 바울, 그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는 중에도 장로들을 불러 밀레도에서 눈물의 고별설교를 하고 있다.
우리도 영원히 이 땅에 머무를 이는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도 떠나고 성도도 떠나야할 순간이 온다. 죽음으로든 아니면 여러 가지 일로 타지나 해외로...다른 교회를 가게 되든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섬기던 교회에서의 시간이 바울의 고백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제대로 한 번 살아보지 못했음을 두려워하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그 푯대를 향해 믿음의 경주를 후회없이 달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